별똥별..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한강변에서 봤는데 사실 그 당시에는 그저 불꽃놀이로 생각혔다. 그런데 SNS에서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별똥별을 봤다는 글들을 보고, 또 유튜브에서 별똥별 영상들을 보고서야 내가 본 것이 별똥별인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별똥별을 봤다'고 참칭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걸 본건 덥고 습한 남쪽 섬나라에 있었던 어젯밤이었다. 그곳에서는 불빛이 없는 칠흑같은 곳에서 별을 보면 말그대로 별 반 하늘 반이어서, 그곳에 가면 새벽비행기를 타기 전 차를 렌트해서 별을 보곤 한다. 기대는 안했지만 찰나의 작열하는 별똥별을 봤고, 소원을 빌어야한다는 룰에 따라 어쨌든 행복하고 싶다는 소망은 생각해낸 것 같다. 나는 행복하지 않으니까.
내 큰아버지가 그렇게 큰 인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별똥별이 내 큰아버지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덥고 습한 남쪽 섬나라에서 돌아오자마자 큰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티셔츠와 반바지를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계속 장례식장에 있다가 지금은 화장장에서 큰아빠의 뼈를 다 구워지기를 기다리며 글을 쓰고 있다.
조부모는 자녀를 많이 낳아 고모들과 큰아빠들이 많은데, 특히 장례식장에서 고모들은 곡비처럼 울었고 브라더콘인 나의 아버지는 이미 실컷 울어 퉁퉁 부은 얼굴로 간헐적으로 울었다. 다른 큰아빠의 아들인 사촌동생은 삼성전자에 다니는데 역시 좋은 회사인지 직계존속도 아닌데 일회용품들을 받았는지 식당의 식기들에는 삼성전자가 박혀있었다. 우리는 직계존속만 주는데, 새삼 사촌동생이 멋있게 느껴졌고, 그런 생각이나 하는 내가 속물같이도 느껴졌다.
나는 솔직히 울지도 않았고 크게 슬프지는 않았지만 그저 침통한 표정으로 있었다. 이분은 공무원이었고, 항상 폭연과 폭음을 했다. 명절때마다는 뵀지만 기억이라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만 마시고 담배를 피우던 기억 뿐이었다. 내 고교시절에 고인은 폐한쪽을 이미 잘라냈고, 공무원 연금 조건이 제일 좋을 때 관두고, 고인의 처가와 조부모쪽 유산으로 받은 땅이 신도시로 개발되어 얻은 큰 수익으로 치악산속에서 가족을 거의 등지고 수년간 곡기는 끊고 원하던 술담배만 하다가 아사하듯 죽은듯 했다.
나와 느낀 바가 비슷한지 이레즈미를 한 고인의 아들인 사촌동생도 내내 울지 않고 있었다. 비슷하게 문신을 한 친구들이 와서 왁자지껄 오래오래 술을 마시기도 했다. 고인이 환갑은 넘은 것도 가족력 때문일 것이다. 친가쪽은 다 장수하니까, 평범한 사람이 고인처럼 자해하듯 살았다면 진즉 작고했을 것이다. 나도 약간은 다른 방법으로 자해하듯 살지만 아직까지는 겉으론 대충 건강하니 말이다.
가까운 가족의 장례를 자의식이 생긴 어른이 된 뒤로 처음 겪어보는데 일반화일지 모르겠지만 장례식장에선 틈나듯이 울고, 술을 마시는 사람은 침통하게 밤새 술을 마시고, 시신을 확인하면서 크게 다시 울고, 화장장으로 가서 화구에 보내며 다시 크게 울고, 뼈가 구워지길 기다리면서는 고인에 대한 졸기를 쓰듯 기억들을 이야기하고 마지막 평을 것이 의례인듯 하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은 바로 그 시점이고 말이다.
이레즈미를 한 사촌동생은 납골당 안치도 거부하고 뼛가루를 조부모 무덤에 뿌리기로 했으니, 아마도 이제 뼛가루를 뿌릴 때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고 이제 뿔뿔이 헤어지고 끝일 것이다. 그리고 다시 유예되었던 나의 시간이 시작된다. 복귀해서는 휴직이나 사직하려는 뜻을 전하려고 했는데, 의존했던 형을 갓 여읜 브라더콘이며 이 직업을 강요했고 또 나에 의존하는 아비의 상태를 보면 다시 자낙스나 프로작이나 벤조디아제핀 같은 약이나 강하게 먹으며 당분간은 그저 있어야 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