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꾼으로 살았던 삶을 청산하고

by 김소원

“와 정말 재미있다.”


난 도박꾼이었고, 8년 동안 감옥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나온 죄수가 처음으로 세상을 경험했다. 야외에서 하는 뮤직페스티벌 공연을 관람했다. 날씨는 화창했고, 기다리던 가수가 나왔다. 공연장에서 물을 뿌려 온몸이 홀딱 젖었을 때, 도파민이 터졌다. 1시간 30분을 미친 듯이 뛰며 놀았다. 경주, 일산, 부산, 수원, 춘천 등 더 많은 걸 보고, 느끼고 싶어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여름의 해운대가 어떤지 알게 되었고,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눈물이 났다. 이렇게 사람 좋아하고, 잘 놀 수 있는 아이를 8년 동안 가둬놨으니, 그 아이가 얼마나 무력하고 외로웠을까, 미안했다.


한 걸음 물러난 채로 수험생 시절의 나를 바라보면 참 무모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차근차근 모아둔 청약통장을 해지해 가며 강의료를 냈고, 친구들에게 오는 모든 연락을 무시했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한 달에 15만 원으로 생활했다. 그 15만 원은 공부에 방해되는 잠을 깨부수기 위한 커피값으로 소비되었다.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울며 스탠딩 책상에서 공부했고, 부모님의 주름이 보이지 않았다. 운전, 운동, 콘서트, 여행, 연애, 영어, 효도.. 등등 나의 시간을 ‘합격 후에’로 멈춰놨다. 나의 시계는 오로지 합격이 되어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다. 난 장수생이었다. 8년이라는 시간을 임용고시에 투자하고 실패했다. 그때의 난 도박꾼이나 다름없었다. 이번 판만 하면 그동안 잃은 거 다 원상복구 할 수 있다고 합리화하며 현실을 포기하고, 매번 “한 판만 더, 한 번만 더.” 그렇게 8년이 흘렀다.


내일 난, 출근할 곳이 있고 그곳을 운전해서 갈 수 있다. 매주 월요일은 수험 생활로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체형 교정 센터에 간다. 얼마 전 한 소개팅이 잘되지 않아 슬펐고, 다음 주에는 최애 그룹의 티켓팅이 있다. 더는 ‘00 후로’ 무언가를 미뤄두지 않는다. 합격 후로 미뤄둔 내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서, 그때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미안해서 더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늘 마음 한구석에 있던 ‘작가’란 꿈도 조심스레 꺼내놓았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소원이는 솔직한 글쓰기를 참 잘하는구나.”라고 칭찬해 주셨던 것, 고등학교 문학 수행평가 독후감에 만점을 받았던 것, 임용고시에서조차 논술은 항상 고득점을 유지했던 것. 어쩌면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일지도 라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고, 글쓰기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고, 신이 난다. 행복하게 꿈꿀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한쪽 문이 소리를 낸다고 하지 않았나. 도박꾼으로 살았던 인생 1막을 정리하고 작가라는 꿈으로 2막을 시작해볼까 한다. 꿈 앞에 또 한 번, ‘간절하다’라는 마음 하나로 모든 걸 미루고, 밀고 가지 않을 것이다. 난 이제 현실을 따질 수 있는 사람이니까. 통장 잔액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고, 힘없는 부모님을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고, 울고 있는 나를 혼내지 않는다. 주변 사람을 챙기며, 현실을 따지고, 재가며 때로는 속물처럼, 때로는 차분히 브런치와 함께 작가라는 꿈을 향해 가볼까 한다. 다시 길고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다 해도, 그곳에서도 진다 해도 괜찮다. 8번의 실패로 다져진 단단함과 성실함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나에게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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