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내가 지금 이 판에 도대체 뭘 거는지. -아이유(IU). coin 중-

by 김소원

2017년 처음, 임용고시를 도전할 때 나는 1년 안에 합격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2년, 3년씩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보며 “공부를 안 했으니까 저렇게 길게 시험준비하겠지.”라고 말했다. 나는 놀지도 않을 것이고,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공부할 것이니까 분명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임용고시를 보고자 다짐하고, 인터넷에 막연히 “유아 임용고시 합격”을 검색했다. 합격수기들이 쏟아졌다. 내년에는 나도 저 합격수기들 속 일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꼼꼼히 봤다. 공통적으로 했던 말은 “유명한 강사 말고 자신에게 맞는 강사를 찾아라”였다. 국내에 있는 모든 유아임용 강사들의 샘플강의를 보았다. 설명해 주는 방식이 나에게 맞는 강사를 발견했고, 1년 강의권을 결제해서 공부했다.


나의 생활은 일정했다.

9시~12시: 강의 듣기

12시~2시: 점심 및 낮잠 자기

2시~6시: 강의 복습하기

6시~7시: 저녁식사

7시~10시: 부족한 부분 공부

주 1회, 토요일 휴식


학생 때부터 식곤증은 못 이겼던 나이기에 점심 후 낮잠 자는 시간은 빼놓았다. 또, 『무한도전』을 정말 좋아했기에 토요일은 편히 쉬기로 했다. 잠을 자지 않거나, 『무한도전』을 보지 않는 것이 더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했다. 잘 노는 사람이 공부도 잘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지만 그 외의 것들은 일체 금지했다. 카카오톡도 지우고, 독서실을 갈 때 휴대폰을 들고 가지 않았다. 친구들과의 안부는 이메일로 주고받았다. 매일 10시간의 공부 시간을 채울 때까지 독서실에 있었다. 좋은 학용품을 써야 공부가 잘된다느니, 정각에 시작해야 한다느니의 핑계도 대지 않았다. 앉으면 공부, 누우면 잠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5개월을 생활하자 간혹 지치는 날이 있었지만 버틸 수 있었다.


늘 인터넷 강의만 듣다가 하반기부터는 노량진으로 직접 가서 강의를 듣기로 결정했다. 매 주말, 왕복 4시간 정도의 거리를 오갔다. 매주 금요일. 새벽 6시에 일어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청량리역에 도착하는 1시간 30분 동안 부족한 잠을 채우고, 노량진역을 가는 지하철에서 시험 날까지 꼭 외워야 하는 종이 몇 장을 꺼내 본다.

전부가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학원으로 향해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엔 김밥으로 때웠다. 밖에 나가 사 먹는 건 사치다.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다. 김밥을 먹으며 책 속 글들을 머릿속에 넣고, 학원에서 돌아와 다시 집으로 가는 열차 속에서 오늘 학원에서 배운 내용들, 내가 틀렸던 내용들을 복습했다.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바로 독서실로 향해 또다시 공부했다. 흔들리는 열차 속에서 글자를 보니 어지러웠고, 시험이 다가올수록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참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이렇게 1년 동안 생활하면 합격이다. 1년 뒤에 해방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독서실 책상에 써 붙인 말이다. 나는 저 말을 좋아했다. 3년제 대학에 나온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지만, 고등학생 때 나는 노력하지 않았다.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노력하면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동안 난 노력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살고 있다.




“카톡, 카톡”

수고했다는 메시지가 연이어서 온다. 시험이 끝났다.


시험이 끝난 저녁, 친구 S와 만나기로 했다. 그때 당시 S는 나와 다른 대학의 유아교육과 4학년에 진학 중이었고, 내년도에 임용고시를 볼지, 취업할지 고민 중인 상태였다.


”1년 동안 어땠어? “


그때 당시 S는 임용고시는 어떤 건지, 수험생활은 어떤지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겪었던 감정들. 열심히 사는 내가 좋다가도, 묘한 불안감에 휩싸였던 것. 자신만만해지다가도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는, 이 세상에 이름 붙여진 단어가 없는 그 이상하고 기묘한 감정들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S는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말했다.


”그래도 나 한번 해보고 싶다. “

”진짜? “

”웅! 생각해 보니까 나한테 시간이 많더라고. “

”어떤 시간? “

”우린 빠른 이지, 그리고 휴학도 한번 안 했지. 한 번쯤은 도전해 봐도 늦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더라고. “

”그러네 진짜. 너 이야기 들으니까 나도 안 늦었다 야 “


S와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상실감을 느꼈다. 난 S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S는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나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교환학생, 어학연수 등 대학생 때 그가 쌓는 경험들이 부러웠다. 나는 방학 때마다 어떤 알바를 할지 고민했고, S는 어느 나라를 갈지 고민했다. S가 가진 여유가 부러웠다. 나도 여유로운척하며 대답하긴 했지만, 노력으로 얻은 사람은 타고난 사람을 한눈에 알아본다. S가 가진 여유는 타고난 것이었다. 그래서 S가 늦지 않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안 늦었다며 맞장구쳤지만, 네가 타고난 것들이 나에게는 없기에 나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럽다. 너. 난 언제쯤 너를 안 부러워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가능할까?’


1차가 끝났다고, 시험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바로 2차 준비를 해야 한다. 2차는 면접과 수업 실연으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수험생은 2차를 위해 스터디를 구한다. 같은 공부를 하는 사람끼리 모여 실제처럼 면접이나 수업 실연을 하고, 피드백을 받는다. 1차 발표전까지 한 달, 발표 후 3주 약 2개월가량의 시간 동안 2차를 준비해야 한다. 1차보다 준비기간이 짧기 때문에 시간을 더 쪼개가며 생활해야 한다. 스터디원들과 주 2회씩 노량진에 있는 스터디카페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그리고 1차 발표가 나면 한 달 동안 노량진에서 생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때까지도 난 내가 시험에 합격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


‘젠장. 내 믿음이 깨졌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집안에서 불합격이라는 것을 알았고, 적막함이 주는 공기가 싫어 곧장 나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집을 나갔다. 평일 오전 10시. 다른 친구들은 학교에 있거나, 출근했을 시간. 만날 사람이 없었다. 아니, 만나기 싫었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나의 불합격 소식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엄마부터 친구들까지 오는 연락들을 무시하며 만화방, 영화관 등 혼자서 시간을 썼다.


이 짓을 8번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