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국주의 서사 의학-
16. 녹색 미각(1)
0. 미각, 그 여러 겹 아우라
인류 역사상 맛(味)이란 말에 가장 웅혼한 미학을 부여한 사람은 단연 원효다. 원효 사상 결정판인 『금강삼매경』은 일미관행(一味觀行)으로 요약된다. 일미(一味)는 일심(一心)을 실천적·감각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일심은 장엄 전경을 향해 가는 삶 내용, 방향, 동기, 가치, 효력 모두를 포괄한다. 이 모두를 소소한 존재·사건에서 소소하게 느낄 수 있도록 일미라고 표현했다. 일심 사상이 거대 관념론으로 흐르는 길을 원천 차단한 셈이다. 요컨대 가장 광활하면서도 가장 소소한 영성, 그 비대칭 대칭을 맛, 그러니까 미각에 담은 묘미가 일미에 있다. 일미는 다미(多味)로 네트워킹한다.
원효 일미와 비교할 바 아니거니와, 우리에게 제법 낯설지 않은 사바랭이 한 ‘네가 무엇을 먹었는지 말하라. 네가 무엇인지 말해주겠다.’라는 말을 거론함 직하다. 먹는 음식에서 신분이 드러난다는 취지로 한 말이 번역 과정에서 ‘네가 먹는 것이 곧 너다.’라고 왜곡되었다 비판하는 견해가 있다. 왜곡이랄 일만은 아니다. 한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 그러니까 추구하는 맛을 통해 성향을 짐작하는 일에는 분명한 일리가 존재한다. 아니 어쩌면 그가 하는 말, 사회적 행동보다 훨씬 더 신뢰할만한 정보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각에 착오는 있을지언정 고의적 위선은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하마 아득히 잊힌 오래전 일 하나가 떠오른다. 이정현이라는 정상배가 새누리당(현 국힘당) 대표에 선출되자 축하 파티를 열어 상어 지느러미와 송로버섯 먹인 박근혜 미각 학예회다. 얼마 뒤 민중 손에 쫓겨날 줄 모른 채, 제 속살을 함부로 대놓고 드러낸 천박한 미각적 커밍아웃이랄까. 선거 때 재래시장 가서 어묵 쇼했던 이명박도 실은 뒤에서 저희끼리는 뭘 먹는지 역으로 드러내는 짓이니 미각 천박함에서는 도긴개긴이다. 비싸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 기품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은 돈 있으면 근본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같은 급이다. 물론 개 웃기는 얘기지만 저 패거리는 사뭇 진지하다.
미각 사유와 실천이 그 사람 상황이나 성향을 결정한다고 하면, 보통 서둘러 무엇을 먹을까 궁리한다. 이 또한 본말전도다. 무엇보다 여태까지 자기 미각이 어떻게 형성·지속·왜곡되어왔는지 있는 그대로 느끼고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현실에는 태아 때 어머니 식성에서 시작하여 지구 기후변화 문제에 이르기까지 중층 요인이 개입한다. 자기 삶을 돌아보면서 어떤 미각, 어떤 음식에 원근·호오 반응을 하게 되었는지 면밀히 살피고 감응하는 치유부터 해야 한다. 미각 쏠림을 조절하고 대칭성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음식을 새로 선택하고 교감하는 일이 흐름으로 일어난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달리 어렸을 때부터 단맛에 끌리지 않았다. 도리어 쌉싸래한 맛을 좋아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아 대신 먹은 미음이 유발요인이었을 법하고, 강원도 산골에서 사시사철 먹은 산나물이 강화 요인이었음 직하다. 양념 맛이 강한 음식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도리어 원재료 맛에 예의를 갖추는 한에서 양념을 쓴 담박한 음식을 좋아한다. 유아가 먹을 수 있도록 미음을 머금었다 흘려보낸 솜이 유발요인이었을 법하고, 할머니 백김치가 강화 요인이었음 직하다. 이런 미각을 내 삶 소중한 일부로 받아 안는 과정이 우울증을 깨닫고 치유하는 과정과 겹친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뜨르르한 요리사와 장인들이 시전하는 저 식도락 향연에 나는 전혀 관심 없다. 그렇게 좋은 맛 높은 경지에 이르고 싶은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경지를 포르노라고 부른다. 포르노를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구가하는 미각 아라한이야말로 아우라 극단에서 어슬렁거리는 비렁뱅이다. 미각이 거느리는 아우라 스펙트럼에도 중도와 회향 진리가 통한다. 개인적 상처에서 지구 위기를 가로지르는 통찰과 심신 전체를 꿰뚫는 미각 조절은 중후하면서도 경쾌한, 의미심장하면서도 재미 무인지경인 경계 시공을 탄다. 그 경계 시공에서 원효 일미와 내 담담 쌉싸래한 미각은 둘이자 하나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