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국주의 서사 의학-
34. 녹색의학은 이간(離間)문명 극복 운동이다
2.
의(醫)는 앓는 소리를 뜻하는 예(殹)에다 술 단지를 뜻하는 유(酉)를 더하여 만들어진 글자다. 고대에는 술로 병이나 상처를 치료했기 때문에 이런 글자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서양 과학적 지식으로 판단한다면, 에탄올 작용을 핵심으로 이용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증류주든 발효주든 순수 에탄올 너머 약 성분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동북아시아 고대 의학에서 주로 사용한 탕약은 대부분 물로 달이지만 술을 넣어 달이도록 한 처방도 있다. 이는 에탄올 추출이 더 나은 경우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뿐만 아니라 술과 더불어 복용하도록 한 처방도 있다.
자연스럽게 醫는, 우리가 아는 의사나 치료라는 기본 뜻 말고, 술이라는 뜻도 함께 지닌다. 하지만 술이 지닌 최초 위상은 신성한 무엇이었다. 종교 지도자가 신을 만나는 방편이었으니 말이다. 술 치료 기능은 아마도 그 신성이 확장, 세속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났음 직하다. 이렇게 종교 지도자는 의사이기도 했으므로 醫에 만신이라는 뜻이 담기는 일 또한 자연스럽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정치지도자가 종교 지도자이자 의사였다. 醫에 보살피는 사람이라는 뜻까지 담긴 점은 이 사실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醫에 담긴 이런 다중 의미를 오늘날 다시 음미할 필요가 있다. 이간 문명이 가르고 또 갈라놓아 모든 존재가 파편화된 현대사회에서 의사는 요법 포르노 기술자로 타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본디 의사는 영적 사람이었다. 세상을 보살피고 돌보는 공적 사람이었다. 녹색 의술을 시행하는 치유적 사람이었다. 본디 위상을 복원해야 한다. 사제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영성과 공공성을 되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요법 포르노를 떠나서 전인 치유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자연과 자연 사이를 흐르는 파동 공동체 매개변수가 돼야 한다는 말이다.
만신이자 술인 사람이 빚어낼 옹근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