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낼모레면 내 나이 육십이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몰라도 내게는 이 사실이 중요하다. 알 만큼 안다는 얘기다. 아내는 내가 외도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아내에게 편집장애가 있어서 그렇게 생각한다고 판단한다. 이럴 때 아내에게 내려만 진다면 그 질병 진단은 곧 내가 결백하다는 선언 효과를 낸다. 나아가 편집장애에 걸린 아내는 인격적 결함을 지닌 사람으로 규정된다.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내 출구는 이뿐이다.
의학적 차원 장애를 윤리적 차원 결함과 일치시키는 일은 명백한 잘못임에도 사회 통념적 위력 때문에 아무런 여과 없이 그런 범주 일탈이 가능해진다. 여기에 편승해 남편은 내가 편집장애라고 주장한다. 외도가 사실일 경우 더욱 강고해질 터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병이 아니라고 부정한다. 나는 더 객관적이고 정밀한 증거를 확보한다. 진행 과정과 그 인과관계를 구성한다. 달리 길이 없다.
확실히 남편이 외도하지 않았고, 확실히 아내가 편집장애 환자인 경우, 문제가 간단해 보여도 해결은 만만치 않다. 왜냐하면 병 문제를 윤리 문제로 비틀어버려서 아내가 치료를 거부할 터이므로. 이때 가장 난처한 사람은 바로 나다. 적어도 아내 쪽에서 보면 내가 남편과 한패이기 때문이다.
화쟁 노력이 필요하다. 한편으로는 정신적 장애를 윤리적 관점에서 보지 않도록 남편을 깨우친다. “장애는 결함이 아니라 결핍입니다, 결함은 교정 대상이지만 결핍은 애정 대상입니다, 곡진한 사랑으로 그 결핍을 치유하십시오,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 한 가지. 외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하지 말고 신뢰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미안해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는 정신적 장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 피해자로서 스스로 소외시키려는 아내를 다독여 치유에 임하도록 한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자꾸 그런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일은 스스로 아프게 하는 길이므로 여기서 멈추십시오, 뇌 안의 특정 신경전달물질 부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므로 담담하게 치료받으십시오. 무엇보다 자신이 신뢰감에 상처를 입어서 이렇게 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일이 중요합니다, 어디쯤에서 어떻게 입은 상처인지 더듬어 거기 웅크리고 앉아 울고 있는 어린 영혼을 안아 일으켜야 합니다, 그리고 필수 불가결한 한 가지. 외도했느냐 여부에 매달리지 말고 신뢰하느냐 자신에게 물으십시오.”
처음에는 우리 두 사람 다 수긍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아내인 나는 상담을 거부했다. 한약도 거부했다. 남편인 나는 나더러 어쩌라는 거냐며 상담 때마다 가서 내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숙의치료자가 마법사일 리 없음에도, 무슨 수를 내주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숙의치료자의 말문을 막은 뒤 우리는 이전으로 표표히 돌아갔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그만이 안다. 꼴 보기 싫어서 우리는 그를 떠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