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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Apr 0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198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팡이실이 숙의 서사 22



회향  

   

지극히 평범한 사람인데 비범한 조건에 휩쓸리는 바람에 나는 평범함과 비범함 사이를 넘나들 수 있었다. 내가 휩쓸린 비범함은 대부분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었다. 증폭된 슬픔과 아픔이 내게 일깨운 진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육중한 무엇이었다. 그 육중함 때문에 잃어버린 경쾌한 평범함, 실로 무량한 아쉬움이다. 그 무량한 아쉬움을 다독이며, 마음 아픈 사람들 동무로 살고 있다. 내 이런 각성과 함께했기 때문에 경쾌한 평범함으로 복귀할 수 있었던 4-6이 있다. 


         

나는 오로지 1등으로 점철된 비범한 시간 위에 군림했다. 켜켜이 쟁여진 1등 삶이 단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 내 이름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으로 0 선생을 찾아가서 내가 한 말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1등이란 대체 무엇일까? 나를 이런 황폐함으로 내몬 힘은 대체 무엇일까?    


  

4-6의 어머니가 말했다. ‘제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죄책감이 아니다. 그 일거수일투족 숨결 하나하나가 어머니 작의를 따라 빚어졌기 때문이다. 결코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풍경이다. 똑같은 어머니들인데 딱 이 지점에서는 달리 생각한다. ‘내 새끼는 달라.’ 자기 아이만큼은 비범하면서도 건강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다. 과연 그럴까.    


 

여러 친족 가운데 내 가족은 유난히 학력에서 돋보였다. 특히, 나는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대학원 석·박사 통합 과정을 수석 입학했으니, 내게 거는 친족의 기대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내가 우울증으로 휴학하기 전까지 친족의 공부 판단 기준은 단연 나였다. 휴학 이후 그 기준은 법전 다니는 육촌에게로 넘어갔다. 나는 도리어 비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0과 삶다운 삶을 숙의한 2년 가까운 나날들,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폐허에 불쑥불쑥 피어난 망초꽃 같았다. 상상해 보라. 초로의 이단 한의사와 우울증에 던져진 젊은 수재가 허름한 변방 구석에 마주 앉아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풍경 말이다. 쓸쓸함을 넘어 어쩐지 궁상맞지 않은가. 그렇다. 그래서 거기가 바로 향 맑은 평범 지성소였다.  

    

정서와 가족 이해가 어느 정도 안정 상태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드디어 평범한 길을 모색해 보기로 하였다. 어떤 사람한테는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바로 공무원 그 길이었다. 의외로 반응들이 나쁘지 않았다. 긴 망설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곧바로 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4-6은 수험 공부를 하면서 노래도 불렀다. 시간이 흘러서 때가 되면 노래로 봉사활동 하는 일이 꿈이라고 그가 말했다. 공유하면서도 긴장을 느끼는 생활 태도 때문에 어머니와 이따금 부딪치기도 하지만 대체로 좋은 흐름을 탈 무렵 서서히 숙의를 마무리했다. 나는 그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때때로 그가 궁금해지기는 하겠지. 그 궁금증도 나와 그 평범한 삶만큼이나 평범한 수준에 머무를 터이기에, 훗날 오가다 혹 만나면 반갑게 안부 묻는 기대 정도로 남겨두기로 했다.


           

2년 뒤 나는 공무원이 되었다. 평범한 공무원, 그리고 그 일이 즐겁다. 나날이 행복하다. 생사를 넘나드는 중병 이후 삶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 때문에 고민하는 어머니에게 나는 0 선생을 찾아가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그와 숙의하면서 평안을 얻었고, 나는 어머니 편에 그에게 안부를 전했다. 평범한 삶에 깃든 내게 그가 특별한 축하 말을 전했다. 

    

“4-6씨, 같이 밥 한번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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