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한 사람이 평생 겪는 불행의 최소치는 있지만 최대치는 없다.”
이치에 닿는 말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들으면서 실제로 그렇지 싶다는 생각이 불쑥 솟아오른다. 내 얘기 같으니 말이다.
처음 ㅂㅇ 선생님을 뵈었을 때, 나는 4살짜리 아이 하나를 두고 이혼한 상태였다. 아이 양육권은 저쪽이 가져갔고, 나는 월 1회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파국은 어쩌면 예견된 바였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일찌감치 이혼해서 나는 계모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와도 계모와도, 그리고 낳아준 어머니와도 친밀하지 못했다. 당연히. 근본적인 친밀감 결함을 안은 채, 지르듯 혼인했으니 당최 제대로 된 일이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며 내게 벌어진 아프고 쓰린 이야기를 하다가 ㅂㅇ 선생님께 저녁 식사를 대접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흔쾌히 그러라고 말씀하셨다. 한창 맛있게 식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어느 순간 내가 뜻밖의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제 아버지가 돼주실 수 있나요?”
앞서 했던 수많은 말보다 사실 이 한마디가 내 모든 병리를 함축하고 있는 무엇이었다. ㅂㅇ 선생님께서는 처음 겪는 일 아닌 듯, 별 망설임 없이 그러마고 대답해주셨다. 그 뒤로 나와 ㅂㅇ 선생님은 부모 자식처럼 삶의 구석구석을 이야기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 재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과정도 함께 지켜보았다. 아이 건강에 문제가 생겨 천신만고하는 모습도 함께 지켜보았다. 온갖 갈등을 겪다가 다시 이혼하는 풍파도 함께 지켜보았다. 문제는 내가 아버지를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데 있다.
내가 원한 아버지가 이런 노릇이 분명 아니었을 텐데, 나는 미리 도움을 청해서 실수와 실패를 예방함으로써 삶을 바꾸는 길을 택하지 못했다. 일이 터진 뒤에 ‘왜 자꾸 이러는 걸까요?’ 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사후에 내린 아버지 처방조차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소식이 끊길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연락해서 약속을 잡으면 꼭 내게 무슨 일이 생겼다. 아니. 무슨 일을 만들었다. 약속은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미루어진 약속은 끝내 아무 약속도 없었던 듯 스러졌다. 나는 꼼짝하지 못한다. 그저 이렇게 정리한다.
“결핍이 낳은 그리움 때문에 타인이 내 경계 넘어 들어오는 일을 막지 못한다. 백발백중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그리움으로 타인 경계를 넘어 들어가지도 못한다. 내 삶을 바꿀 기회를 번번이 놓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ㅂㅇ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내가 그날 이렇게 질문했더라면 삶은 분명히 달랐으리라.
“선생님, 제가 아버지로 모셔도 될까요?”
아, 젠장. 나는 아직도 그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어. 우울증이라나 뭐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