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알맹이

-숙의의학 소설-

by 강용원


뜻밖에 총명하고 깔끔해 보인다. 똑 떨어지는 서울말을 구사한다. 경위가 바르다는 인상을 준다. 함부로 끼어들거나 헤프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물며 허리까지 꼿꼿이 편다.


맑은 정신일 때 ㅅㅈ가 그려내는 최상급 풍경화다. 막상 아프고 슬픈 내면 풍경으로 들어갈라치면, 돌연 마치 내면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반응한다. 기억도, 기억에 붙어 있는 감정도 일절 흘러나오지 않는다.


ㅅㅈ는 중증 알코올중독이다. 전문병원에도 들락거렸으나 나아지는 바 전혀 없었다. 지친 가족이, 그러니까, 딸이, 그러니까 아들이 손을 놓아버렸다. 결국, 그는 영리하고 치밀하게 술만 ‘흡입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자유를 획득했다. 빠른 속도로 몸도 마음도 붕괴해가는 일이 그 자유가 주는 대가였다.


ㅂㅇ는 일단 ㅅㅈ가 병과 생을 숙의할 힘이 남아 있는지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그 깍듯한 페르소나에 말려 희망 끈을 놓지 않았다. 얼마 가지 못했다. 그는 오직 껍데기로만 존재하고 껍데기로만 말할 뿐이었다. 더는 속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드러낼 속이 본디부터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기 때문에 대화 지속은 무의미했다. 잠깐 퍼포먼스 외출을 끝내고 그는 이내 옛 생활로 복귀했다.


ㅅㅈ를 보낸 뒤, ㅂㅇ는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정말 그에게 내면은 없는 걸까? 사실 우리가 쉽게 내면이라는 말을 쓰지만, 외부 세계와 절연된 내면이란 있을 수 없다. 내면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되는 기억·감정·각성·의지 흐름이다. 결국 내면 내용은 관계 내용이다. 내면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관계에 문제가 있다. 이런 이치로 본다면, 마치 내면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일은 그가 접촉은 하지만 실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일이 낳은 결과다. 실질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까닭은 미상불 상처일 터. 그 상처를 각성하지 못하는 한 이 악순환 고리는 끊을 수 없다. 그 경우, 상처는 즉자적 상태, 그러니까 몸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각성 이전 아득한 곳으로 퇴행한 상태다. 막강한 퇴행 후원자가 바로 술. 술은 모성 이미지로 그를 포근하게 감싸 각성이 주는 서늘함을 차단한다.


이런 전경 앞에서 의자는 겸허와 절망을 동시에 느낀다. 그가 가는 길을 빤히 보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ㅂㅇ는 그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나마. 그러니까. 하염없이. 한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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