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나는 인생이 술술 풀리는 사람으로 주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공황 상태에 빠졌다. 공황 뒤엔 우울증이 덮쳐왔다. 영문을 통 알 수가 없었다. 나도 가족도 속수무책이었다. 뭔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긴급한 상황인데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생애 길목을 통과하는 동안, 내가 한 노력에 비해 일이 잘, 그것도 아주 잘 풀려왔음은 어김없는 사실이다. 거의 한 번도 위기에 봉착한 적이 없다. 모든 일이 마치 섭리처럼 흘러갔다. 사실 거기에는 가족이 베풀어준 결정적 보우가 있었다. 그 보우는 약이기도 했고 독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 독 날에 베인 모양이다. 가족은 나를 숙의치료자 ㅂㅇ에게 보냈다.
가족 강권으로 상담하긴 하는데 여전히 ㅈㄱ은 자기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시간이 흐르면 뭐가 돼도 되겠지 하는 유아기적 사고에 붙들려 있었다. 질문하면 그 즉시 대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참 뜸을 들이다가 대답하는데 대부분은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 나머지는 피상적인 답변이었다. 이야기 주제를 제시하고 준비해오라 해도 응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책을 추천하고 읽어오라 해도 머리 긁적이며 넘어갔다.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고 가족 걱정이 수그러들자 숙의 예약에 아랑곳없이 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그를 걱정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는 전과 같이 ‘자알~’ 살고 있을 터이기 때문이었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심각한 위기가 오거나 자기 문제를 문제 삼게 되지 않는 한, 무심중에 살아가는 삶을 지속할 터였다. 그런 삶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기도 하겠다. 저 찰스 슐츠가 말한바 ‘인생에는 목적도 의미도 없다. 그냥 나는 행복하다.’ 정도로 달관했다면 말이다. 그게 어디 쉽겠나. 2년가량 지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숙의를 청해왔다. 그는 앉자마자 스스로 입을 열었다.
“별로 아는 바 없는 제가 생각하기에도 지금 우울증 상태인 듯합니다.”
그가 예시하는 증상들은 틀림없이 우울장애 전형적인 표지였다.
나는 분명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었다. 판단도 선택도 실행도 모두 어려웠다. 모든 곤경 근원은 하나, 여태까지 삶 자체가 거대한 문제이며 그 앞에 마주 설 주체는 오직 자신뿐임을 인정하지 못한 바로 그 문제였다. ㅂㅇ는 내게 자기 딸아이 어렸을 때 잠 깨우던 방법을 들려주었다. 일어나야 할 시각 5분 전에 딸아이 방으로 조용히 들어간다. 귓속말로 다정하게 별명을 부른다. 그리고 딱 한 마디만 한다. 4분 57초 동안 뒹굴뒹굴! 그는 이어 나를 향했다.
“뭘 해야 한다는 당위 의식을 내려놓습니다. 현재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도망가고 싶어 하는 자기 심리적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줍니다. 그리고 딱 사흘 동안 뒹굴뒹굴할 여유를 스스로에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