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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May 25.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43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10 


         

신비주의 그 너머  

    

제국주의 공부와 부역 서사 쓰기에 진심인 요즘 이에 부합한 실천으로 숲 정화와 네트워킹 제의를 시행하고 있는데 누군가 신중히 물었다: 선생님, 신비주의자세요?   

   

신비주의 아니면서 신비에 깃드는 이치를 자분자분 말해주었으나 어려워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물론 나도 어렵다. 쉽게 자주 대놓고 일어나는 경험이 아니어서 그렇고, 그래서 신비는 실재지만, 살갗에 닿는 설명은커녕 묘사조차 힘들다. 어제저녁 나는 다른 길에서 깨달음과 만났다.  

    

백반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돌아와 한의원 건물 현관문을 열려다가 열쇠 꾸러미를 떨어뜨렸다. 하필 복개 하수로 구멍 속으로 리튬 건전지가 빠져버렸다. 10년이 훨씬 넘은 일이라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간호사를 찾아가 리튬 건전지를 받아왔다.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았다. 비밀번호 찾는 과정에서 이리저리 손댄 탓으로만 여기고 다시 간호사에게 연락했더니 부랴부랴 왔다. 순식간에 문이 열렸다. 간호사가 막 웃는다: 원장님, 이러시기에요?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간호사가 묻는다: 혹시 비닐 팩 속에 있는 채로 터치하시지 않았나요? ‘문·송’ 타성을 지닌 나는 그 질문이 뜻하는 바를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 생각에 잠겼다. 비닐 팩 속에 있는 리튬 건전지를 터치한 행동과 가죽 커버 속에 있는 교통카드를 터치한 행동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정직하게 말하자면 그 차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같으리라 무심코 생각한 ‘문·송’ 나태를 그제야 불현듯 알아차렸다. 전자기로 통합할 수 있다고 해서 전기와 자기가 본성상 똑같은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전기와 자기는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不二而不一), 내 용어로 말하면 비대칭 대칭 사건이다. 이 이치를 생각하는 일과 생활하는 일은 다르다. ‘문·송’이 아니라면 범할 수 없는 사소하나 커다란 실패가 나를 통렬한 반성과 깨침으로 초대했다.   

   

둘도 아니고 하나도 아닌 실재를 둘로 분리하면 기계론, 하나로 환원하면 신비주의다. 신비주의 전복했다고 자부하는 기계론이 오류라는 진실은 되돌아 기계론 극복한답시고 신비주의에 빠져드는 오류를 향한 경고다. 기계론과 신비주의 경계에서 피는 꽃, ‘신비 기계’가 참 실재다.


“나는 나고 나무는 나무다. 나는 나만이 아니고 나무는 나무만이 아니다. 나는 나무기도 하며, 나무는 나기도 하다. 나는 나고 나무는 나무다.” 

    

     

좀비가 안산을 횡보하다    

 

백악산은 한양도성 주산이고, 자하(창의)문 고개를 경계로 서쪽에 인왕산이 있다. 인왕산은 조선왕조 수호 산으로 불교 금강신 이름을 붙였고, 무악재 고개를 경계로 서쪽에 안산이 있다. 조선을 개국할 무렵 한때 이 안산을 주산으로 하여 도읍하려 했다고 한다. 그랬더라면 지금 연세대학교가 있는 자리에 궁궐이 들어서고 이를 중심으로 한양도성이 조성되었을 터이다. 풍수적으로 그만큼 좋다는 뜻일 텐데 풍수 잘 모르는 나로서는 걷기 좋은 숲이 확실하다는 말 정도만 할 수 있다. 다른 경로로 다섯 번 걸었는데 모두 좋았다. 산 무서워하는 아내와 함께 오면 딱 알맞겠다고 이번에도 생각했다.  

    

안산은 생긴 모양이 말안장(鞍)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이 鞍을 파자하면 혁명과 안정이라는 뜻이 나온다. 혁명해서 정국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치적 야심을 지닌 패거리가 이 산을 끼고 돌며 더불어 놀았을 법하다. 마치 도봉천 계곡 일대에서 놀았던 기호 노론 패거리처럼 말이다. 시대 배경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한양도성 주산이 될 수도 있었던 산에 그런 야심을 새겨넣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더군다나 서인이라면 말이다. 맞다. 서인이 그랬다.  

 

  

이번에 안산으로 향한 까닭은 요즘 내가 계속해 왔던 바로 그 제의 때문이다. 물론 현 부역 세력 뿌리인 서인과 안산에 얽힌 서사가 대상이다. 지도 보며 예정했던 바와 달리 미우관과 평화학사 사이 연대동문길을 따라 연세대학교 교정 동쪽에서 진입해 안산으로 향한다. 조금 가다 왼쪽으로 돌면서 왼쪽을 보니 제법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나는 직감적으로 청송대라고 알아차린다. 지난 1990년대 초반 연대에 강의하러 드나들면서 말로만 들었던 그 청송대를 30년 만에 뜻하지 않게 들어간다. 다양한 버섯들과 인사하며 이리저리 거닐다가 아주 조그만 도랑물을 발견한다. 호젓한 곳 택해서 정화 신목 버드나무 가지를 삼가 심는다. 간절하게 기도한다. 안산과 그 앞 벌판에 육중하게 자리 잡은 이 학교 숲이 정화 네트워킹을 고요한 함성으로 펼쳐주기를. 

          

숲길은 연대 교정에서 안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처음 얼마간 계속되는 소나무 숲이 참 아름다웠다. 내가 택한 길이 안산 서북 사면 쪽이기도 하지만 장마철이어서 촉촉한 분위기가 알맞게 배어 있었다. 주로 작디작은 버섯들이 곳곳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천천히 가장 긴 경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수시로 길을 놓쳤지만, 작은 산에 워낙 많은 길을 낸 터라 금세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에 길이 막혔다 포기한 순간 나타난 쪽문을 통해 다시 연세대학교 교정으로 돌아왔다.  


    

백양로를 그리며 길 따라 걷다 보니 하나둘 기억이 살아났다. 물론 백양로는 위치만 같을 뿐 대부분 생경한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학교 측에서 교수·학생 의견을 무시하고 역사와 생태를 뒷전 한 채 ‘재창조 프로젝트’를 밀어붙여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백양로라는 이름이 발원한 백양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렇다고 하겠지만 은행나무가 마치 남의 집에 들어온 불청객처럼 엉거주춤하다는 내 느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천억 원이란 돈이 어디서 나와 이런 토목을 벌였을까. 140년 전통 영역이 싸구려 영화 세트장처럼 테라포밍된 이 살풍경이 식민지 공학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인가.  

   

단골 음식점에 앉아 국수를 시킨다. 먼저 막걸리부터 달래 한 잔 그득 따른다. 벌컥벌컥 소리 내어 마신다. 영혼이 발하는 신음을 목이 내는 소리로 바꾸니 답답함이 조금은 풀린다. 중첩 식민지 쌍것으로 태어나 똑 이와 같은 그림을 되풀이하며 살아가는 내가 뜬금없이 무섭다. 찰나마다 더 새로워지고 순간마다 더 즐거워지는 중독 제국에서 나는 좀비로 살고 있지 않은지 와락 겁난다. 가족과 약속한 장소로 향하는데 자꾸 목이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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