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용원 Jun 01.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49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16 


         

장옥정을 찾아서  

   

하루 종일 비가 지짐지짐한다는 일기예보를 보자 숲에서 비에 홀딱 젖던 기억이 마치 어떤 음식에 물리면 입맛이 뚝 떨어지듯 갑자기 낯선 느낌으로 다가와 야생 숲으로 가려던 뜻은 일단 접는다. 느지막이 출발해 지지난 주 경로를 따라간다. 교보에서 리베카 솔닛을 하나 더 담고 도심 나무 순례에 나선다.   

   

인사동길을 따라 율곡로 방향으로 올라가 길을 건너면 서쪽이 송현동이다. 최근 공원으로 돌아온 그곳은 오랫동안 위압적인 돌담으로 막아 놓은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나는 일본대사관으로 잘못 알고 있었으나 실은 미국대사관 관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이든 미국이든 점령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제4회 서울 도시건축비엔날레가 설치 미술 하늘소(所)라는 공간을 마련해 놓았다.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가까운 일대는 물론 멀리 백악산과 인왕산을 트인 시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어제와 오늘을 표상하는 경복궁과 청와대를 한 눈길에 두니 새삼스레 오늘 오욕 한가운데 있는 내 삶이 통렬하게 다가든다.  


     


소격동을 거쳐 화동을 가로지르고 마침내 원서동 창덕궁 서쪽 담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걷는다. 나무 순례길 반환점인 돈화문 옆 5백 세 은행나무께로 간다. 어르신 나무에 대한 예의를 내팽개친 관리 흔적이 갈수록 역력해진다. 속죄제를 소리 없이 지내고 땡볕을 피해 가며 관훈동 단골 국시집으로 향한다.   

   

국시집에 앉아 한참을 망설인다. 어디로 갈까? 홀연 서오릉이 떠오른다. 고교 몇 학년 땐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서오릉으로 소풍 갔던 기억이 아슴아슴하다. 그 시절 갈 데라고는 궁, 능, 절이 전부였으니 특별한 경험이 뭐 있었겠나. 흙먼지 이는 길을 지루하게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왔다는 기억 말고는 없다.  

    

잠시 서오릉을 검색했다. 서오릉에는 숙종과 그 비빈이 묻혔다. 특이하게도 경종을 낳았으나 나중에 폐서인이 된 장희빈은 서오릉에 묻혔고 영조를 낳은 최숙빈은 소령원이라는 다른 곳에 묻혔다. 소령원은 현재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TV 드라마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자못 의아스러운 풍경이다.   


  

장희빈이 그토록 사악했는지, 최숙빈이 그렇게 어질었는지, 물론 실체적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최숙빈 장지를 찾는 과정에서 숙종이 보인 반응은 냉정했다 한다. 장희빈과 최숙빈은 각각 남인과 서인 아바타로서 영욕을 함께 했다는 사실 외에 사적 진실은 영원 속으로 사라졌다고 해야 옳을 듯하다.  

    

나는 그 침묵하는 역사 속으로 들어간다. 그동안 여러 버전으로 들어온 서사들-사실 정사 기록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마찬가지다-을 있는 대로 놔둔 채 나 또한 침묵한다. 능에서 눈으로 보는 풍경만 담고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희빈 장옥정이 묻힌 대빈묘 앞에 망연히 서서 한참이나 시간을 쌓아둔다. 그냥  

 

  

죽은 존재와 소통하는 일은 생명 팡이실이 본성이다. 그러나 죽은 존재가 품은 진실을 산 존재 그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관건은 진실 여하를 뒤지는 일보다 밝힐 진실 따위는 없다, 또는 진실은 이미 밝혀졌다, 또는 진실을 다 안다고 단정하는 자가 무슨 서사를 쓰는가다. 그 서사에 진실이 접혀 있다.  

     

진실은 아주 가까이 있지만 모호하다. 특권층 부역자 지배 집단이 bullshit 접힌 면에 진실을 감추고 집어던지기 때문에 성찰적 사유에 능하지 못한 대중은 늘 확실한 쏠림 상태에 놓인다. 저들에게 진실을 외치느니 차라리 진실이 가리키는 쪽으로 행진하는 일이 도리어 역사를 사는 자세가 아닐까, 한다.           

작가의 이전글 나나보조 이야기 24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