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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n 05.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52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19 


         

 석가석비상석(石可石非常石) 

   

숲길 걸을 때 돌탑을 보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 비단 절집 인근이 아니더라도 있을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돌탑이 있다. 돌탑을 보며 종교적 의미를 떠올리지 않기란 힘들다. 자그만 돌 하나를 올리며 의식적으로 무슨 소원을 빌지 않더라도 무심코나마 어떤 바람을 싣기 마련이다. 물론 그 바람이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하는 사람도 있을 리 없다. 그러고 보면 인간에게 주술은 본성에 새겨진 무엇인 듯하다.  

    

한 걸음 물러나서 생각해 본다. 돌탑 쌓는 목적이 종교성에 국한될까? 합리적으로 추정하면 길에 널린 돌들을 치움으로써 보행에 안전과 편의를 더하려 함이 기본적이고 실질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다음에 종교적으로 의미가 부여돼 제의 위상으로 굳어졌다고 이해하면 더욱 그럴듯하다. 이성 환원 냄새가 나지만 태초부터 기획한 제의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진실에 부합하는 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숲에서 길 잃는 일을 자주 겪으면서 한 가지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인적이 지워진 숲을 헤매다 작은 돌탑 또는 그 흔적을 발견하면 바로 그 순간 인적을 복원하는 육감이 생긴다는 사실에서 비롯한 변화다. 돌탑은 사람이 지나갔다는, 또는 지나가고 있다는, 또는 지나가도 된다는 표지로 작용한다. 길은 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더하면 돌탑에는 이정표 의미까지도 얹을 수 있다. 돌 위에 놓인 돌은 비상하다.  


     

            

탑가탑비가탑(塔可塔非塔)  

    

언젠가 안산 숲으로 들며 산 무서워하는 아내와 와야겠다는 글을 썼는데 엊그제 뜬금없이 아내가 안산에 가보잔다. 물론 내 글을 읽어서거나 이심전심이어서가 아니다. 직장 동료 한 사람이 안산 근처에 사는데 그렇게 좋다고 하더란다. 버스를 갈아타고 이대 후문에서 내려 연대 교정으로 들어간다. 전에 들어갔던 소나무 숲길을 따라간다. 얼마쯤 갔을까. 오르막 오솔길이 시작되자 아내가 그만 가잔다. 오늘 운동량을 다 채웠단다. 나는 흔쾌히 돌아서 내려간다. 아내 생각에 이의를 제기할 생각이 없다. 아내가 버스 타고 사무실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내 다음 숲길을 이리저리 살핀다.

     

지하철로 이동해 불광역에서 내린다. 지도에서 확인한 진흥로19길에서 들어가는 소곡으로 향한다. 아주 작은 계곡이 갈래 져 있고 길은 그 사이 둔덕으로 나 있다. 물이 말라 숲은 온통 풀벌레 소리로만 가득하다. 조금 더 들어가자 실낱같은 물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물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돌 틈 아래 또는 뒤에서 이를테면 복류하는 작은 물줄기가 내는 소리다. 반갑기도 하고 어쩐지 애잔하기도 한 풍경에 빙의돼 한참 서 있는다. 가파른 바윗길이 자주 나타나는 길을 오르다 옆 소곡으로 들어가는 비탈길로 들어선다. 세 번을 돌아 진흥로 325로 내려가는 소곡에 접어든다.   

  

이 소곡은 지나온 소곡과 달리 물길이 깊이 파였고 폭포라고 해야 할 만큼 낙차 있는 물줄기가 군데군데 나타난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이 거의 끝까지 계속된다. 지워지고 흐트러진 인적 때문에 길도 마치 사람을 외면하는 듯한 풍경이다. 끄트머리께 이르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람이 살고 있단 말인가. 인기척은 없다. 그런데 계곡 끝나고 도로가 시작되는 입구에 이르니 철망 문이 막아선다. 사유지라 할지라도 산 위에서 내려오게는 터놓고 나가지 못하게 잠그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거침없어진다. 철망 문 옆 부분 철망 울타리를 밟아 낮추고 넘어간다.     

 

시간이 그리 촉박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세 번째 계곡, 그러니까 녹번천이 발원한 골짜기로 향한다. 복개를 면한 계곡 입구 인근 녹번천 귀퉁이에 송사리가 살고 있다. 인간 문명 틈새에서 자연 생명은 이리도 강인하게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지나던 사람들도 덩달아 와서 그 생명들을 확인하고 간다. 계곡 입구에는 제법 큰 소리를 내는 폭포가 있다. 거기부터 전개되는 계곡 풍경이 사뭇 아름답다. 무엇보다 물 가까이 물길 따라 난 숲길이 좋다. 시간상 능선에 오를 때까지 가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 같은 길 되돌아오기를 싫어하는데 이 길은 다르다. 별일이 아닌가.   


  

조금 내려오다가 큰 바위들로 이루어져 상서로운 기운이 감도는 장소를 보고 가까이 간다. 상류인 이곳에도 송사리가 살고 있다. 처음처럼 가만히 들여다본다. 여기 저 생명을 키우는 녹번천 도시 구간은 30년 전 복개되어 지하 구정물로 흘러가고 있다.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데 얼마나 어떻게 진행했는지 나는 모른다. 또 다른 토건은 아닐는지 걱정스러운 생각이 든다. 나는 조용히 조그만 돌 하나 집어 바위 위에 올려놓는다. 숲과 물과 인간을 마음에 담고 간절히 돌탑을 쌓는다. 무엇보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포악과 협잡 본진인 부역 과두를 축원한다. 내 축원이 참 축원임을 송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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