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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n 13.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59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25  


      

신덕왕후에 이끌리다  

   

북한산 계곡 순례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 좋지 않은 소식이다. 오늘(’23.11.5.) 한때 멈추긴 해도 종일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다. 가려고 했던 길은 숨은 계곡에서 들어가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 험한 능선을 넘어 하루재를 거쳐 도선사 계곡으로 나가는 경로라서 비가 오면 힘들지 않을까. 망설이다가 다음 주로 미룬다.  

    

느지막이 집을 나서 광화문 교보를 향한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이 지은 『숲에서 우주를 보다』를 보기 위해서다. 교보를 떠날 무렵부터 빗줄기가 가늘어진다. 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백악산 정도라면 몰라도 두 배 이상 더 높은 북한산을 넘지는 못하겠구나 싶어, 이내 백악으로 들어간다. 늘 걸었던 그 길을 따라간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제의를 수행한 뒤 전에 걸어본 적 없는 길을 따라 숙정문으로 간다. 한양 도성길을 가로질러 삼청각 쪽으로 내려간다. 성북설렁탕에서 점심 식사하고, 맞은편 언덕 좁은 골목길을 걸어 길상사를 향한다. 길상사 분위기가 전과 다르다.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손길이 더해진 느낌이 들어서 총총히 떠난다.   

   

북악산로를 관통해서 정릉 숲 서쪽 경계를 따라 난 소로로 접어든다. 숲이 끝나고 잠시 동네 길을 걸어 정릉에 당도한다. 나무 한 그루마저 정겨운 60년 인연 이 숲은 내게 그리움이자 아늑함이다. 동네 사람 관지에서 보면 그저 산책하기 좋은 곳이나 내겐 고향 한 모퉁이를 떠다 놓은 곳이다. 무심히 다시 오는 까닭이다. 

  

   

오늘 무심히 다시 왔으나 와서는 유심히 생각한다. 이성계와 더불어 조선을 일으킨 신덕왕후 강(康) 씨가 영면에 든 정릉은 조선을 팔아먹은 부역 집단 계열 윤석열과 더불어 대한민국을 팔아먹는 중인 김 씨가 들락거리는 청와대와 대척을 이룬다. 제의를 수행할 지성소로 인식하는 순간이다. 오늘 비가 내린 곡절 아닐까. 



신덕왕후를 이끌다   

  

전날 제자들과 너무 유쾌한 술자리를 가진 탓에 심신이 찌뿌듯하다. 35년째 이어오는 인연인지라 이 모임에서는 심취와 숙취가 동의어다. 해정을 위해 조금 일찍 집을 나선다. 백악산 남쪽 사면을 남서에서 북동으로 관통하는 청와대 전망대-법흥사 터 골짜기-숙정문-성북동-정릉 길로 향한다. 지난 5일 처음 걸었던 길인데 낯익음과 낯섦이 교차하면서 묘한 제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유념하고 살피러 간다.  

   

청와대 전망대에는 너덧 사람 모여 왁자하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다. 그들을 지나쳐 조금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8자 진언으로 축원 올리고 숙정문을 향해 가면서 찬찬히 살펴보니 법흥사 터 골짜기는 물을 제법 품은 실한 소곡이다. 이 물이 내를 이루어 경복궁 동쪽을 거쳐 광화문 교보 뒤로 흘러 청계천과 합류한다. 중학천이다. 이런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땅과 숲으로 향하는 눈길은 더 깊어진다.    

  

이미 걸어 본 숲길이라고 해서 데면데면해진다면 등산이다. 나는 등산하지 않는다. 등산이 아니어야 걸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으로 말미암아 숲이 지닌 매혹은 결결이 펼쳐지고 겹겹이 쌓인다. 소곡들 갈피를 감아 돌며 숙정문에 다다르기까지 백악산 아리잠직한 숲은 싱그러운 내음으로 그때그때 가득 찬다. 수시로 멈춰 서서 바람 소리, 나뭇잎 서걱대거나 떨어지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물소리를 듣는다.  


   

숙정문이 까꿍 나타나 대사관로 따라 성북동으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다. 성북동은 내게 평창동과 흡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박정희 유신정권 말기 실세로 군림했던 차지철이 성북동 살았다. 50년 전 그 집에 에스컬레이터가 있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성북동도 도둑촌이구나 하면서 살았다. 가난한 얼굴을 틈틈이 내밀긴 해도 과연 대부분 집은 저택 수준이다. 특권층 부역자 소굴이 틀림없다.    

  

성북동을 벗어나자마자 북악산로를 가로지르면 정릉동이다. 능선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상이 드러난다. 눈앞을 가로막는 골프 연습장은 정릉동 사람 아닌 성북동 사람을 위한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 그 아래 무슨 갤러리도 마찬가지다. 백악산 북동쪽 사면 자락은 가난을 즈려밟고 재개발 아파트를 쌓아 올린 욕망으로 낭자하다. 그 한가운데에 사방팔방 물어뜯긴 신덕왕후 유택이 있다. 그곳으로 나는 간다.  

    

8자 모양을 그리며 산책로 모두를 천천히 걷는다. 작은 물소리를 가만 들여다본다. 사위어가는 단풍 검붉은 빛 냄새를 맡는다. 거칠고 빠르게 날아오는 직박구리 노랫가락을 톡 건드린다. 마침내 신덕왕후 체취를 귀 기울여 듣는다. 그 육백 년 체취는 내 육감으로 피어나 비원을 빚어낸다. 나는 곡진히 신덕왕후를 역사에서 현실로 이끌어 모신다. 신덕왕후는 어디부터 나투시기 시작할까?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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