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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n 15.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61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27 


         

안국사에서 육상궁까지   

  

2023년 11월 마지막 일요일 아침, 아무런 계획 없이 집을 나선다. 버스 타지 않고 걸어서 관악에 들어가기로 정한다. 수많이 걸었던 그 길을 천천히 따라가며 어제 인연 짓기와 오늘 인연 짓기를 엮고 얽는다. 어제와 오늘 이야기가 맞물면서 역사는 현실로 부활하고 현실은 더욱 중후해진다. 여기서 미래가 창발한다. 


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 일이 서로 넘나들며 걸음 속도를 갈래 지게 한다. 가을 끄트머리라 갈래는 비교적 단출하다. 까치산길을 조금 걷다가 인헌공 강감찬 길 안내판에 눈길이 가닿는다. 그 길을 걸어 강감찬 장군 사당인 안국사로 가볼 생각이 불현듯 든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에서 인헌공을 잠깐 본 탓이리라.   


     

원작자 의도를 정확히는 모른다. 드라마 의도는 더욱 모른다. 중국과 한껏 척지고 있는 현 상황, 정치 문외한 대통령, 그리고 아버지 놀이하는 ‘법사’를 떠올리면 딱 맞아떨어지는 알레고리가 대뜸 들이닥치니 아연 심사가 날카로워진다. 묵념하면서 간절히 빈다: 장군이시여, 당신께서 그리 소비되는 일을 막아주소서! 

    

묵직한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채 백악 남서쪽 끄트머리 칠궁으로 향한다. 후궁이면서 임금을 낳은 일곱 분을 모신 사당이다. 흩어져 있던 궁을 여기로 모았는데 본궁이 다름 아닌 저 숙빈 최씨의 육상궁이다. 그런데 정작 그 본궁 현액만은 “궁”이 아니고 “묘”다. 묘는 궁 아래 등급이 아니던가. 대체 뭔 곡절인가?   


  

다시 정치적 알레고리가 들이닥친다. 서인 최숙빈: 남인 박정희. 현재 내 능력으로는 안국사 서사도 육상궁 서사도 내막을 알 방법이 없다. 내 ‘음모론’적 상상력은 나 하나 인생에 영향을 미칠 따름이지만 권력이 알게 모르게 꾸미는 음모 실재는 사회 전체를 뒤틀어 버린다. 이런 일을 무수히 겪으면서도 ‘설마’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 설마 했던 이승만이, 설마 했던 박정희가, 설마 했던 전두환이, 설마 했던 이명박이, 설마 했던 박근혜가, 설마 했던 윤석열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잡았는가. 관악 발치에서도, 백악 발치에서도 나는 죽임당한 자들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숲이 품고 있다가 들려주는 명징한 웅얼거림이다.  


   

육상궁에서 정릉까지 

     

다른 생각 끼어들 여지 없는 아침, 나는 육상궁으로 향한다. 눈에 한껏 진심을 담아 초군초군 살피고 조용히 서서 역사 속 숙빈을 현실로 모셔 온다. 정중하게 고한다: 신덕왕후께로 모시고 가겠습니다. 비원 머금어서 다시 한번 궁을 향해 묵념하고 나온다. 


    

육상궁을 끼고 백악정으로 가는 가장 서쪽 길에 들어선다. 이 경로는 처음이다. 60대 초반 대여섯이 왁자지껄 떠들며 내려온다. 신라 사투리를 장전한 울대 하나가 소음들을 압도적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 bullshit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하지 않을 수가 없다.    

  

청와대 전망대 근처도 고요에 금이 가 있다. 연방 셔터를 눌러대는 사람과 멀찌막이 떨어져서 나지막이 축원 주(呪)를 낭송하고 표표히 떠난다. 오늘따라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길목 길목 둘러앉아 숲을 흔들어 댄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나는 숲에 사과한다. 

    

숲에서 나와 성북동 골목을 더듬으며 나아간다. 지도를 보고 등성이 작은 골목 골목을 살핀다. 빈곤의 고고학이 여러 층위를 이루어 쌓여 있는 지붕이며 담벼락이며 널린 빨래며 깨진 화분이 초겨울 햇살 아래 바래고 있다. 건너편 저택들에는 등을 돌리고서.  


  

 

해가 제법 기울어진 시각 정릉에 들어선다. 능침 진입을 막아 놓았으므로 금천 건너편 언덕에 서서 고한다: 숙빈을 모셔 왔습니다. 나는 두 분을 동시성에서 이어드린다. 두 분께서 일제 부역 정권 암캐가 빙의한 사령을 거두어 주십사 간곡하게 빌어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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