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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용원 Jun 26. 2024

나나보조 이야기 270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34  

   


하이드 소굴에 목부(木符)를 심다  

   

누에 다리가 놓인 재 건너 몽마르트르 공원 일대도 미도산이라면, 미도산 자락에는 또 다른 특권층 부역 집단 소굴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서남쪽 모퉁이 맞은편에 똬리 튼 대한민국 학술원과 예술원. 보통 시민은 여기 그 소굴이 있다는 사실조차 잘 모른다. 자신이 낸 세금에서 떼어내 종신직 회원에게 매달 180만 원씩 수당을 지급하는 곳이라는 사실은 더욱 모른다. 여기는 지킬 얼굴 뒤에 숨은 하이드가 희희낙락거리며 범죄를 저지르는 밤 세상이다.  


    

피상적으로 생각할 때 학술·예술원 종신회원은 대한민국 학자와 예술가가 누리는 최고 명예다. 그러나 일제 문부성 1호 국비장학생이자 대한 총독 윤석열의 아버지인 윤기중이 학술원 회원이었으며, 특권층 부역 예술가의 대표 아이콘인 서정주가 예술원 회원이었다는 사실은 단박에 그 생각을 범주적으로 부숴버린다. 나아가 대한민국학술원과 예술원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고 누구를 위해 존속하는가, 깊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한눈에 알 수 있게 한다.  

    

두 얼굴 가진 도둑 떼가 입 모아 지절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시라. 먼저 <대한민국학술원 선언문>이다. 정말 정나미 떨어진다.    

       

우리 民族은 原來 文化를 尊重하고 學問을 愛護하는 知性의 所有者이었다. 이 知性으로써 각 時代의 難局을 打開하여, 國家社會와 民族文化를 發展시켜 왔던 것도 事實이다. 그러나, 近世 以來 우리 社會의 跛行性과 밖으로부터 물결쳐 오는 新文明과의 渦中에서, 後進社會의 文化的 理想的 混亂을 면치 못한 채 지금에까지 이르렀다.  

   

이 民族의 文化的 思想的 危機를 克服하기 위하여 한 새롭고 참다운 文化의 建設… 특히, 科學的인 現代文明의 精粹의 集大成이란 커다란 精神的 指標의 確立과 그 實踐이 이때처럼 火急한 때는 다시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民族的 現實의 要請에 의하여 科學者의 最高機關인 學術院의 誕生을 오늘에야 보게 되었지만, 그 意義야말로 深且大한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學術院의 歷史的 發足에 際하여, 우리 科學者들은 우리에게 負荷된 使命에 對하여 새로운 認識과 覺悟를 거듭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우리 民族이 이 땅위에 새롭고 참다운 文化를 再建하고, 그것을 發展시키는 面에서 새로운 民族生理를 發見하게 될 것은 再言을 要치 않거니와 그러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學問의 自由를 確保하고 獨創性을 發揮하여야 하며, 適時 適宜 文化政策에 관한 의견을 政府에 건의할 權利와 義務가 賦課된 것을 잊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學術院의 使命은 이 分明한 目標의 達成을 위하여 學問的 實踐行動을 活潑히 推進시킴에 있는 것으로 認識된다. 그러면, 우리는 아래와 같은 當面課題의 推進을 거듭 約束하여 둔다.     

1.

우리는 過去文化와 傳統에 대하여 再批判 再檢討를 가하는 同時에 새롭고 健全한 民族文化 再建의 指標와 그 實踐의 具體案을 確立한다.     

2.

學問의 自由를 確保하고 獨創性을 發揮하여 우리의 民族文化 뿐만 아니라 널리 人類文化에    있어서의 寄與 貢獻이 있기를 自期한다.     

3.

先進諸國의 學術院과 緊密한 連絡을 取하여 우리 學界의 後進性을 克服한다.  

   

1954년 7월 17일

대한민국학술원 


         

다음은 예술원 <宣言文- 藝術院創立에 즈음하여 ->이다. 참으로 참담하다. 

          

學問과 藝術의 自由를 保障하고, 科學者와 藝術家의 地位를 向上시키기 爲하여 制定 公布된 「文化保護法」에 依한 藝術院이 오늘 우리 나라에서 正式으로 發足됨을 宣言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創設되는 藝術院은 大韓民國의 憲法에 依해서 保障된 藝術의 自由를 守護 發展시킬 義務와 法律에 依해서 明示된 國內外에 對한 藝術家의 代表機關이라는 名譽를 負荷한 것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榮光스러운 義務와 名譽를 깊이 自覺하고 이를 爲하여 우리의 最善을 다할 것을 嚴肅히 盟誓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古典的인 民族藝術의 傳統을 正確히 繼承하고 現代世界藝術의 精粹를 正當히 吸收하여 우리의 民族藝術의 正統을 形成 發展시키는 것이 우리의 基本的인 路線이며, 이를 爲해서는 藝術의 自律性이 嚴格히 保障되고 藝術家의 國家的인 處遇가 한層 더 改善되지 않으면 아니된다는 것을 이에 闡明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偉大한 國家의 礎石은 偉大한 藝術의 創造에 있음을 깊이 認識하고 우리 民族의 不幸이 藝術로 因해서 除去되고 우리 民族의 幸福이 藝術로 因해서 造成될 것을 믿으며 우리는 藝術을 通하여 靈魂과 理念과 榮光을 創造하는 偉大한 課業에 國內外의 모든 藝術家들과 協力 共進할 것을 이에 公約 宣言 하는 바입니다.  

  

西紀 1954年 7月 17日

藝 術 院

創立會員一同  


      

당대 최고급 엘리트 대뇌에서 나온 허접한 개소리가 저들이 지닌 정체성을 웅변해 준다. 학술원 회원 중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자만도 열다섯이다. 회원은 각종 상, 훈포장을 받아 영예와 이익을 챙겼다. 심지어 골수 부역자는 그 행적을 지워 역사를 왜곡했다. 그뿐만 아니라 회원 80%가량이 서울대(경성제대) 출신이다. 서울대 총장을 지낸 이장무는 이완용의 증손이자 이병도의 손자인데, 그가 바로 현임 학술원장이다.    

  

예술원도 화려하다. 친일 인명사전에 오른 예술원 회원은 미술계: 김경승 김기창 김은호 김인승 노수현 윤효중 이상범 장우성, 음악계: 김동진 김생려 김성태 이흥렬 현제명, 문학계: 곽종원 모윤숙 백철 서정주 조연현 최정희, 연극계: 유치진이다. 이들이 일제에 어떻게 부역했는지, 해방 이후에 어떻게 표변해 예술계를 지배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아니 덮어버린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그런 채 시간은 계속해서 쌓여만 간다.  

    

나는 아프고 슬픈 마음을 끌어안고 저들 소굴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학술과 예술이 문화에서 무엇인지 모를 수 없으므로 분함과 안타까움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인적 끊어진 고요한 틈으로 배어들어 버드나무 부(符)를 심는다. 간절한 팡이실이 기도를 올린다. 저들 소굴 주위를 육중하게 걸어 신령한 외끌이 저인망에 가둔다. 저들 소굴에 가라앉은 흑역사를 죽고 나서도 기억하기로 다짐하며 가슴 식혀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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