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68
성내천 거슬러 청량산까지
올여름은 덥다고 표현할 단계를 넘었다. 끓는다는 표현이 나올 만했다. 그러나 이 정도도 앞으로 다가올 여름들에 비하면 고마운 수준이라 하니 참으로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처서가 지났으나 한낮은 여전히 불볕이다. 양산 챙겨 한성백제역을 향해 간다. 거기서 몽촌호라 이름 붙여진 본디 성내천을 따라가다가 직선으로 만들어진 인공 성내천을 생략하고 바로 성내천 본줄기를 거슬러 올라갈 생각이다.
지금 성내천은 성내동하고 아무 관련이 없지만 본디 성내천은 지금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 성내동을 돌아 나와 송파강으로 들어갔다. 송파강을 메워 잠실 섬을 육지로 만들 때 물길을 틀고 직선으로 만들어 한강에 합류하도록 한 인공천이 현재 우리가 보는 성내천이다. 석촌호수는 송파강 흔적이고 몽촌호는 성내천 본류 흔적이다. 산뜻한 산책로가 편하기는 한데 역사 지운 언저리라 심사가 편치 않다.
몽촌토성 망월봉에 오른다. 한성백제 시대에 풍납토성은 평시 수도로 여기를 전시 수도로 삼았다는 설이 지지를 얻고 있는데 성내천이 자연스럽게 해자를 형성해 주는 풍경을 보니 과연 그럴 법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강이 지니는 지정학적 위상을 고려하면 백제가 왜 여기에 도읍했는지 실감한다. 강(물)과 산(숲)이 필수 전제였을 고대 건국 조건에 비출 때 오늘날보다 더욱 진지한 고뇌가 서려 있을 테다.
현대인이 볼 때 바다도 아닌 한강, 나지막한 동산인 망월봉, 그 어름에 쌓은 작은 토성은 얼마나 하찮은가. 함부로 파 뒤지고 대놓고 덮어 그 자취 지우는 짓을 거리낌 없이 해온 오만은 그러나 무지에 터 한 협잡에 지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제국 착취를 거쳐 부역국 토건에 짓밟히는 동안 형성된 식민지 기회주의 막장 탐욕은 역사는 물론 물과 숲 모두를 깡그리 오염으로 몰아넣고 만다. 너저분한 풍경이다.
너저분한 인간 세상에 절망할수록 물 가까이 다가간다. 인간 죄악에 관통상을 입은 물도 아픈 체취를 풍긴다. 성내천을 거슬러 청량산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겁다. 복개 도로가 나타나기 직전 MB 청계천처럼 지하수를 끌어올려 강제로 내보내는 곳에 다다른다. 아이고, 결국 이거구나! 얼른 거기를 떠나 남루한 복개 도로변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대뜸 정나미부터 떨어진다. 양산을 덮어쓰고 총총히 지나간다.
복개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 ‘학암천’이란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성내천 상류가 분명한데 그 표지판 선 곳 관할 지자체가 행정상 이유로 그리 명명했음이 틀림없다. 나는 괘념치 않고 물을 살피며 골짜기를 따라간다. 물길 따라 늘어선 건물들은 대부분 낡고 적잖이 버려진 상태다. 모두 영업 포기한 상점이다. 그것들 때문에 물길은 더욱 어수선하다. 청량산 기슭에 썩 들어서서야 비로소 고요가 찾아든다.
나는 시원한 그늘 있는 갯가를 찾아 물 모심 하고, 얼굴을 씻는다. 숲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호흡하고 쉰다. 한참 동안 그렇게 머무르다가 가족과 약속한 곳으로 향한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길을 내려오며 마음은 한껏 씁쓸해진다. 골짜기 끄트머리서 심기일전 웃으며 물에 작별 인사를 한다. 다른 데서 또 만나면 서로 알아볼 수 있기를 빈다. 아스팔트 밑을 지날 때 부디 잘 견뎌 너른 데로 나가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