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습관은 어린 시절 집의 온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어린 시절 겨울철에 담요로 몸을 감싸고 있었는지, 방이 따뜻해서 티셔츠를 입었는지에 따라 ‘열 기준선’이 만들어진다. 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지는 뿌리 박힌 편안함의 감각이다.···따뜻한 집에서 자란 아이는 외부 온도와 무관하게 성인이 되어서도 온도 조절기를 더 높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격 형성기의 습관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_코메디닷컴
어디 열 기준선뿐일까. 거의 모든 정신장애, 정신병 또한 어린 시절 받은 자극과 반응에 뿌리를 둔다. 크게 보면 모든 정신장애, 정신병은 발달 불균형 증후군-호시노 요시히코(星野 仁彦)가 『발달장애를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에서 쓴 용어-이다. 미국 정신 요법 가운데 과거 아닌 현재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 있는데 이는 그들 특유 제국주의 사고를 드러낸 오류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동심원을 그리며 번진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쟁여진다.
어린 시절 상처를 문제 삼을 때 흔히, 특히 가해자가 입에 올리는 말은 이렇다: 다 지난 일을 가지고 왜? 틀렸다. 지난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이 죽었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죽은 사람은 없는 사람이 아니다. 입자적, 물적 실재만을 실재라고 하는 제국주의 사고를 일소할 때가 진즉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식민지에서는 주류로 대우하고 있다. 어른인 내 인격 속에 neoteny가 엄존하듯 어린 시절 습관과 상처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
한의원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컴퓨터 켜기다. 창이 열리면 예쁜 아기가 웃는 얼굴로 나를 맞는다. 심리 전문가에 따르면 아기 얼굴 심지어 그 사진이나 그림을 보아도 어른은 조심 mode에 돌입한다고 한다. 내가 아기 사진을 건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마음 아픈 사람을 치유할 때, 마치 어린 아기처럼 곱고 촘촘한 마음길로 대하려고, 아니, 발달 불균형인 채 성숙이 멈춘 어린 아기 실재(the real)를 다습고 살갑게 대하려고 말이다.
고백하건대 내 자신과 한 이 약속을 나는 충실히 지키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상처받은 아기가 내 앞에 있는 아기를 적지않이 질투했다; 어른 흉내 내며 내 앞에 있는 아기를 적지않이 꾸짖었다. 아무리 똑 한 걸음 앞 스승이 실팍한 스승이라지만 이만하면 농익을 법도 한데 갈 길은 아직 아득하다. 글쓰기를 잠시 멈추고 컴퓨터 화면 속 아기 눈을 그윽이 들여다본다. 다정한 눈빛에 이끌려 나도 한껏 다정해진다. 부디 잃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