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77
한강진 제전- 다시, 한남동 백악산
2024년 12월 29일 일요일 나는 한강진역에서 출발해 한남동 백악산을 한바퀴 걷고 다시 한강진역으로 돌아옴으로써 명신이 아방궁을 포위했다. 그들이 포박되기를 간절히 바라서다. 공수처는 실패했고, 그래서 민주노총과 응원봉 시민이 아방궁 앞으로 진격했다. 2025년 1월 4일 토요일 나는 진료를 서둘러 끝내고 다시 한남동 백악산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경의 중앙선 한남역에서 내려 독서당로를 따라 올라갔다.
피로를 모르는 제전(祭戰)은 여전히 아니 더더욱 신명과 결기로 출렁이며 뜨겁다. 그 광경을 보면서 나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적는다. “여고생과 민주노총이, 성소수자와 전농이 이렇게 만나 얼싸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다 명시니, 그 집사람 서겨리 덕분이다. 너무나 고마워서 사면 없는 무기징역을 선물로 보낸다. 사형은 가벼워서 안 된다. 죽기보다 더 즐거운 깜빵생활을 길이길이 누리게 축복해야 마땅하다.”
오늘도 후원 음식 축낼 수 없어 잠시 한남오거리로 나와 소박한 음식점으로 들어간다. 옆자리 두 테이블에 강원도 철원에서 온 전농 전봉준 투쟁단 사람들이 저녁을 먹는다. 나는 주인을 불러 그들 밥값을 먼저 결제한다. 이 사실을 안 한 사람이 내게 와 소주 한 잔 따른다. 결코 잡담일 수 없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주를 마신다. 이렇게나마 나는 용감하고 현명한 소녀들에게 진 빚 작은 일부를 갚는다.
감히 밤을 지새우지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이 노릇을 어찌하나. 그러나 이 소심한 낭패감은 한강진 소녀와 민주노총 사람하곤 아무 관련이 없다. 2025년 1월 5일 아침 나는 SNS로 공지를 확인한 다음 여지없이 다시 한강진으로 간다. 눈을 고스란히 맞았던 키세스 시민이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K-민주주의 장엄한 풍경이다. 저들이 곧 생불이고 살아계신 하느님이다.
하느님들을 모시는 조그만 수도원이 그 옆에 있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쉼터와 화장실을 내주고 가벼운 음식까지 대접한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꼬락서니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하기야 멀리 갈 며리도 없다. 바로 건너편에서 사탄 짓을 하는 전광훈, 신천지 떼거리가 있으니 말이다. 종교에 뭘 크게 바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속한 이 사회를 위해 최소한으로 져야 할 짐만은 부디 져주기를 소망한다.
일요일 저녁은 가족과 식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달래서 약속 장소로 간다. 순댓국을 먹으며 일상으로 돌아온 그 밤, 나는 이렇게 페이스북에 적는다. “···한남동 백악산 마루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필경 까치일 터. 젊은 벗들과 밤을 지새우지 못했지만, 기쁜 소식 함께 기다릴 수는 있지 않을까, 하며 미안함을 껴안은 채로나마 잠을 청하려 한다.···”
대한민국에서 “시민”으로 사는 일은 어렵다. 여의도, 광화문, 남태령, 한강진 제전을 이끈 소녀들 가슴에도 희디흰 부채 의식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말한다. 하물며 나 같은 가장자리 늙은이한테 드리워진 검디검은 죄의식이야 말해 뭣하겠나. 특권층 부역자 헤게모니 블록이 져야 할 짐이지만,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기꺼이 진다. 저들을 인간이라고 여기지 않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