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80
효제동에서 회룡계까지
2023년 1월 22일, 나는 도봉산 회룡계에서 죽었다. 제국에 부역한 무지렁이라는 자각을 옹골차게 하지 못한 채 살아온 내 삶이 거기서 무참히 스러지고 말았다. 그 죽음에서 출발해 나는 지난 2년 동안 제국주의와 허울 대한민국 특권층 부역 집단 실상을 맹렬하고 통절하게 공부했다. 이후 부끄러운 반제 전사로서 내 정체성이 자리 매겨지고 염치를 되찾기 위한 분투가 삶 굴대로 자리 잡았다. 1월 22일은 이렇게 내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특별한 한 날이 되었다.
2025년 1월 22일, 2년 전 그날을 되새기며 하루를 되작거리던 시간 틈을 찢고 홀연히 들이닥친 한 사실(史實) 앞에서 나는 얼어붙는다. 그날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23년 1월 22일이 바로 김상옥 의사 순국일이다. 그는 권총 두 자루만으로 기마대와 결사대까지 동원한 왜경 400명에 맞서 총격전을 벌인다. 3시간 반 동안 자신은 열 군데 총상을 입고 왜경 십수 명을 사상에 이르게 한다. 총알이 다 하자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남은 한 발로 제 목숨을 끊는다.
김상옥 의사가 영웅으로 싸우다 영웅으로 죽은 곳이 서울특별시 종로구 효제동 72~76번지, 그러니까 대학로 36-4·12·14·16, 그리고 30-10 일대다. 허름한 건물 몇 채와 비좁은 골목은 그 역사에 관해 침묵한다. 대학로로 나가면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 “효제동” 뒷자리에 써놓은 “심상옥의거터”와 그 밑에 간략히 적은 기록판이 초라한 증언으로 남아 있다. 흔히 의사라면 안중근·윤봉길·이봉창을 떠올리지만, 김상옥이야말로 의사 중 의사다. 이리 대해도 되는가.
나는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고 서성인다. 버스 정류장 기록판에 적힌 내용에 따르면 여기는 김상옥 의사가 “일제 군경 1천여 명”과 싸운 “단독 대첩”지, 곧 민족 성지다. 승패를 떠나 이 정도라면 우리 역사 그 어떤 대첩에도 뒤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후예들은 길 건너 저편 마로니에 공원 한 모퉁이에 뻘쭘하니 동상 하나 세운 뒤 그 밑에 “열사”라고 오기까지 해놓는다. 지금 겪는 내란 사태가 이런 몰역사에서 발원한다고 말해 결코 무리일 수 없다. 참 참담하다.
나는 길게 발을 끌며 효제동을 떠난다. 다시 갈 일 없으리라 생각했던 도봉산 회룡계로 향한다. 잔설이 희끗희끗 깔린 길을 따라 2년 전 죽음으로 들어섰던 길 들머리에 닿는다. 망연히 길 없는 길을 올려다본다. 그때처럼 흰 눈을 머리에 덮어쓰고 앉은 산등성이에 커다란 슬픔 하나 걸어놓는다. 내려오다 그 슬픔을 우뚝 서 계신 회룡사 관음보살님께 맡긴다. 홀연히 김상옥 의사 동상에 서렸던 보랏빛이 관음보살상에도 드는 걸 본다. 산새가 울음소리를 거둔다.
인간학 관지에서 내 회룡계 사건과 김상옥 의사 효제동 사건은 무관하나, 내 범주 인류학 관지에서 둘은 동시성을 이뤘다. 이 동시성 서사로써 나는 반제 전선 지평을 넓혔다. 내 생명에 강인한 동력이 보태졌다. 내 생애에 숭고한 소식이 더해졌다. 1월 22일을 기점으로 1년이 순환하는 팡이실이 고리 하나가 늘어났다.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 겉 불안과 속 희망으로 지켜볼 날들이 남았다. 1월 22일은 이렇게 내게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특별한 두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