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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보조 이야기315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by 강용원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83


두 두물머리 이야기- 무수천에서 도봉천까지


“오늘도 계획이 없어?” 옆지기가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지하철 타고 어디선가 내릴까 하다 지나치면 대략 끄트머리까지 가. 가까운 곳에 숲과 물이 있거든.” 오늘도 그렇게 서울역을 지나쳤기에 꾹 눌러앉아 있었더니 열차가 도봉역까지 데려다준다.

열차에서 나오자마자 도봉산을 본다. 불쑥불쑥 솟아 산 몸체를 가로막고 있는 건물과 이리저리 하늘에 금을 긋는 전선, 그 식민지 풍경 틈새로 도봉은 수려한 자태를 드러낸다. 언제 봐도 아름답다.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어 한참 바라보다 무수천으로 간다.


무수골을 좋아해 여러 번 왔던 터라 익숙하게 진입로로 들어선다. 여느 때보다 각별하게 물소리에 주의를 기울이며 천천히 따라간다. 날씨가 푹해져서 냇가로 나온 아이들이 제법 있다. 채 녹지 않은 얼음장 위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미 봄 전령이다.


나는 지도를 살피며 무수천을 떠나 서북향 비탈길을 탄다. 높이 오를 생각 없다. 대략 250m 높이 능선까지 간 다음 도봉천을 향해 내려갈 계획이다. 오늘은 물소리에서 출발해 물소리로 마무리하기로 한다. 내 물 그리움이 채워지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내 물 그리움은 강원도 평창 월정사 아랫마을을 휘돌아 흐르던 오대천을 향하고 있다. 오대천은 남한강 제1 지천으로 발원지 우통수에서 내려와 정선 조양강으로 흘러든다. 그 오대천 본류가 개자니골에서 내려온 지천과 만나는 두물머리에 고향 집이 있었다.

어릴 적 주된 놀이터가 바로 그 두물머리 언저리에 있는 작은 소(沼) 둘이었다. 물이 깊어 푸르게 보여서 경이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한가운데로 들어가려면 자못 용기가 필요했다. 여름엔 헤엄쳐, 겨울엔 썰매 타고 가로지르며 물기운에 배어들었다.


거기를 떠나온 지 올해로 만 60년이다. 그 기억을 불러내려고 무수천과 도봉천이 나를 초대했다 여기자 발걸음이 아연 홀가분해진다. 서울 와서 깊고 길게 앓았던 우울증은 그 물기운에서 멀어진 탓도 클 테다. 치유 인생 갈무리로 올해엔 꼭 다녀오련다.

인디아 전통 의학인 아유르베다도 우울증을 물기운 결핍으로 여긴다. 또 어떤 유럽 전승도 나무를 사랑해 나무가 된 물이 버드나무며 그 나무-물이 우울증 치유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들이 말하는 물이 다만 은유가 아닐진대 물은 분명 치유력을 지닌다.


내 숲 공부가 결국 물 공부로 흘러든 곡절은 이렇게 시원과 근원 진실로 나를 이끌어간다. 도봉천으로 내려와 물 따라가니 결국 무수천과 만나는 두물머리에 이른다. 손 모으고 허리 접는다. 받은 물기운을 알량하나마 반제 전사로 사는 길에 부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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