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84
백악 유정
지난해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다음 날 나는 백악에 올라 숲과 축하를 함께했다. 헌재 인용이 남아 있어서 8자 진언을 내려놓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10주 만에 다시 백악으로 향한다. 다음 주 화요일(2월 25일) 헌재 최종 변론을 앞두고 마지막 진언을 올리려 함이다.
바람이 스산해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는 될 법한 날씨 탓인지 여느 때보다 인적이 뜸하다. 청와대 전망대는 적요가 감돈다. 정화수로 땅에 예를 표하고 상황을 사뢴 뒤에 마지막 진언을 삼가 올린다. 바람이 잦아든다. 곡진한 심사를 갈무리하며 천천히 걸어 숲 깊숙이 들어간다.
계곡으로 내려가다 보니 양지바른 곳에 나무 의자 하나가 놓여 있다. 이따금 바람이 스치기는 하지만 다사로운 햇볕을 쬐며 앉아 있기에 딱 좋은 곳이다. 상념 흐르는 대로 두고 그저 숲을 멍하니 바라본다. 하 많은 숲 걷기에서 오늘처럼 해 아래 오래 앉아 있었던 적은 없다.
휴식이나 명상이 아니다. 나는 휴식이나 명상을 일상과 분리하지 않는다. 평일엔 한의원으로, 주말엔 광장과 숲(물)으로 출근한다.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공휴일에 한의원을 연다. 오늘 여기 백악 숲은 일요일 일터다. 일터가 쉼터다. 쉼터가 솟터다. 함께 반제 통일전선을 이룬다.
백악 숲을 떠난다. 삼청공원 거쳐 북촌로 따라 내려온다. 이윽고 헌법재판소에 닿는다. 경찰 차량이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다. 군데군데 태극기 든 제국 부역 마름 종자들이 수런거리며 서성인다. 저들이 든 태극기와 헌재 국기 게양대에 걸린 태극기는 어떻게 다른 태극기인지.
저기 백악 숲과 여기 헌재 풍경은 전혀 무관해 보이지만, 아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 산 백송이 숨을 거둔 뒤 베어보니 1910~1945년 사이 나이테가 없었다고 한다. 백악 숲도 화나고 우울하고 불안하다. 얼른 매국 내란을 수습하도록 백악 숲은 우리와 고요히 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