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준비

by 강용원

30년 가까운 감옥살이에서 풀려난 넬슨 만델라에게 누군가 물었다. “그토록 긴 세월을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그가 대답했다. “견디지 않고, 준비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며 나는 엄마 없는 나를 키우시고 40년 전 돌아가신 할머니 어록 하나 떠올린다.


“너무나 가난해 땟거리가 없어도 새벽같이 일어나 샘으로 간다. 동이 가득 물을 담는다. 몇 번이나 이고 와 커다란 가마솥 가득 붓는다. 아궁이에 불을 지핀다. 굴뚝 따라 연기가 피어오른다. 굶어도 부엌을 데워야 부뚜막신이 복을 부르시는 법이다.”

다만 견디지 않고, 준비하며 가난을 통과하신 슬기다. 할머니는 공식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셨다. 오로지 생활 경험에서 우러나온 질박한 이야기를 내게 여럿 남기셨다. 그 이야기는 그저 새길 만한 금언 정도가 아니었다; 내 삶을 짜온 얼개 매듭이었다.


나 또한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할머니 슬기를 따른다. 5시경 일어나, 6시경 떠나서, 7시 30분경 한의원 문을 연다. 무인지경 속에서 진료를 준비한다. 명신이 친위쿠데타가 이 겨울 나를 더욱 가난하게 만들지만 나는 다만 견디지 않는다; 봄을 준비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한국의 개신교 보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