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85
이제야 종묘
계획 없이 그냥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갑자기 종로3가역에서 내린다. 느닷없이 종묘를 걷기로 마음먹어서다. 60년 서울 살면서 궁과 능은 여러 번 걸었으나 종묘는 단 한 번도 걸은 적이 없다. 신당인 데다가 볼거리가 그리 없으리라는 부박한 선입견 탓이 틀림없다. 무지가 선입견을 낳고 선입견은 무지를 굳힌다.
나무위키 『종묘』 <여담> 편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종묘는 다른 궁궐에 비해 일반 사람들 관심을 덜 받지만, 건축 권위자들에게는 반대로 반드시 방문하는 한국 대표 건축물로 자주 언급된다. 일본 현대건축의 거장 시라이 세이치(白井晟一)는 “서양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면, 동양에는 종묘가 있다.”라며 종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프랭크 게리는 종묘를 보고 크게 감명받아 “세계 최고 건물 중 하나며, 한국인은 이런 건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15년 만에 한국에 다시 왔을 때도 가족들과 종묘를 방문하고,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곳을 굳이 말하라면 파르테논 신전 정도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작업을 했던 렘 콜하스, 장 누벨, 자하 하디드처럼 건축 역사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들도 다들 한 번씩 다녀갔다. 건축 사진작가 중 최고로 손꼽히는 헬렌 비네는 오직 종묘·병산서원·소쇄원 사진만 찍어 책으로 출간했다. 이렇듯 건축계 사람들에게는 다른 궁궐보다 더 높은 취급을 받는다.
이런 찬사는 기축 건물 두 동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 특히 정전을 향한다. 정전과 영녕전은 제왕과 왕후 신위를 모신 곳이다. 정전에는 제왕 19위, 왕후 30위가 계신다. 영녕전에는 제왕 16위, 왕후 18위가 계신다. 정전은 길이가 101m나 되어 내삼문 안에서 확보되는 전경을 한 컷 사진으로는 찍을 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거대 목조건물이다. 현판도 없고 단청도 예만 갖춘 정도다. 건축 목적에 걸맞게 검소·중후·장엄하다.
특별한 신당 셋이 더 있다. 칠사당(七祀堂)은 사계에 일곱 작은 신, 예컨대 겨울에는 도로를 다스리는 국행(國行) 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다. 공신당(功臣堂)은 국가와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기리고 명복을 빌던 곳이다. 태조 공신 조준(趙浚)을 위시한 92위가 계신다. 나머지 한 곳은 더 특별하다. 바로 공민왕 신당(恭愍王 神堂)이다. 고려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신위를 모신 곳이다. 왜 고려 제왕, 특히나 공민왕 신당을 여기에 지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태조 이성계가 명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신당 정면에는 두 분 초상화가 걸려 있고, 공민왕이 그렸다는 <준마도>도 측면에 있다. 아마도 이성계가 고려 장군으로서 충실히 모신 주군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작용했을 듯하다.
또 다른 특별한 건물이 있는데, 다름 아닌 망묘루(望廟樓)다. 제왕이 제례 때 여기서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을 추모하고, 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은 곳이었다고 한다. 이곳을 사사로이 써서 능멸한 장본인이 김명신이다. 국가유산청도 인정하고 얼버무리긴 했으나 사과문을 낸 바 있다. 차후 그가 얼마나 어떤 악행을 저질렀는지 모두 밝혀지겠지만 그야말로 상상 초월이다. 윤석열이 파면되고 내란 사태가 수습되어 “나라와 백성을 돌보고자 마음을 가다듬은” 지도자가 나서서 나라와 백성을 부디 제자리로 돌려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부 사정을 모른 채 걷다가 정전 앞에 이르렀는데 출입 금지다. 151년 만에 정전을 보수하는 중이며 신위까지 옮겨놓고 하는 큰 공사라 몇 년째 계속하고 있단다. 확실하지는 않으나 4월 말쯤 마무리할 예정이란다. 오늘은 정전 풍경 부분만 담고 영녕전 전경 사진으로나 눈을 달랜다.
나지막한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창경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본디 창경궁과 연결돼 있었으니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강점 시절 일제 총독부가 둘 사이 연결된 기운을 끊으려고 길을 내버렸다. 지금 율곡로 일부 구간인데 그 길을 지하로 만들고 다시 연결한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왜놈이 한 짓은 김명신이 한 짓과 본질이 같다. 사악하고 방자하다.
이곳을 여러 번 다시 찾게 되리라. 나중에 안 사실 하나 보태어 이곳을 내 반제 결기 가다듬는 지성소로 삼을 근거에 갈음한다. 한국전쟁 때 종묘에 보관되던 조선 왕실 국새(國璽) 29과, 어보(御寶) 47과를 도둑맞았다. 예컨대 일제강점기에도 살아남은 태조 금보를 미군 놈이 훔쳐 갔다. 왜놈이 도둑질해 간 대한제국 국새를 맥아더가 돌려줬는데, 미군 놈이 다시 도둑질해 갔다. 대군주보를 비롯한 몇 과는 되찾았지만 대부분 오리무중이다. 미군 놈이 한 짓은 왜놈이 한 짓과 본질이 같다. 미군 놈 말고 종묘 약탈범 가운데 조선 놈도 있다. 그 도둑놈이 한 짓은 김명신이 한 짓과 본질이 같다. 사악하고 방자하다.
이제야 여기를 찾아와 제국에 짓밟힌 내력을 알고 가슴을 치다니 나는 영락없는 무지렁이 부역자 맞다. 모멸과 상처를 안은 채 묵묵히 후손들 앞에 보이지 않는 엄존으로 실재하는 조상, 그 초저주파 음성을 자주 와서 들어야겠다. 슬픔을 정전 내삼문 턱에 앉혀놓고 종묘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