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90
월미도를 찾아서
바다가 보고 싶다. 교통비 제로로 바다를 보려면 인천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일기예보에 맞춰 옷을 갈아입은 뒤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생각보다 날씨가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인천은 여기보다 기온이 높다고 했으니 그냥 간다. 그냥 가서 두 시간 뒤 낭패를 본다. 거기가 바닷가라는 사실을 이때는 미처 챙기지 못했으니 말이다.
스물여덟 정거장을 달려 인천역에 내리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진다. 이런! 집 근처 을씨년스러움 주된 요인이 거친 바람이었는데 인천은 더 사납다. 그나마 비는 아직 맞을 만하다. 길과 맺은 인연을 확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어서 나는 6번 국도 서쪽 끄트머리인 인천역 앞 큰길 제물량로로 간다. 6번 국도 서쪽 끝 표지판을 찾아낸다. 비바람을 뚫고 제물량로 따라 동북쪽으로 걸어간다. 만석고가교 직전에서 되돌아 월미도를 향한다.
체감으론 영하 날씨다. 바람은 잘 생각이 영 없다. 춥고 배고프니 서둘러 밥을 먹어야겠다. 때마침 허름한 기사식당이 있다. 알코올 중독에 가까운 동네 할아범 몇과 어머니 모시고 온 중년 여성이 앉아 있다. 나는 구석 자리로 들어가며 동태탕과 소주를 주문한다. 소주부터 연거푸 석 잔을 들이켠다. 찬 속이 짜르르 풀어진다.
밥 먹고 다시 바람 속으로 나아간다. 월미로를 따라 걷는데 관광특구라는 표지판이 눈길을 끌어보려 애쓰지만, 나는 식민지 역사를 담은 거리 벽 사진과 그림에 꽂힌다. 그런 내 눈에 전통 양식으로 꾸몄다는 월미공원은 라스베이거스 짝퉁으로 보인다. 얼른 공원을 지나 월미산 전망로로 들어간다. 느닷없이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다. 우산 쓰고 수풀 새로 바다를 더듬어 찾는다. 바다는 콘크리트와 쇳덩어리에 잘려 경계가 흉물스럽다.
훼손된 물은 식민지에서 더 큰 신음을 낸다. 모멸이 증강되어서다. 땅 아닌 바다부터 강탈한 일제 침략을 받은 역사 한가운데 월미도가 있다. 갑문 설치 이전 큰 배가 정박할 수 없었던 제물포 대신해 월미도는 개항기와 강점기 모진 풍파를 겪었다. 요충지였던 월미도가 유원지로 타락한 역사 근원에도 일제가 똬리 틀고 있다.
이런 아픔과 슬픔을 알고서 월미도를 보면 오늘날 분위기가 처연함으로 다가든다. 숲에서 나와 2024년 말에 문을 연 국립인천해양박물관으로 간다. 곱고 촘촘하게 다 돌아보지 못해 전체를 정확하게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제강점기 이야기를 바르게 전해주어 다행이라 여기며 나온다. 강풍이 몰아치고 있는 험한 바다로 최대한 가까이 다가간다. 보고자 했던 바다가 식민지 무지렁이인 내게 어쩌면 꼭, 똑 이런 모습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