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보조 이야기351

-허울 대한민국 부역 서사-

by 강용원

숲이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주축이다116


세 절집 이야기

최근 세 일요일에는 도봉산 회룡사, 삼각산 도선사가 있는 골짜기와 삼각산 화계사를 거쳐 가는 서울 둘레길을 걸었다. 미리 이렇게 계획하지는 않았고 그날그날 떠오르는 생각을 따랐다. 다만 숲을 걸을 때 되도록 절집일랑 그냥 지나치던 습관을 깨고 찹찹히 돌아보기로 한 일이 이를테면 작은 계획이었다.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 숲에 빙의되어 서울 안팎을 휘돌던 내 발길과 숲에 깃들어 자리 잡은 절집 사람 발길이 어떻게 마주하는지 정색하고 살피려 함에서였다.

회룡사 대웅전 주련에 이런 글귀가 있다: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徧十方中). 부처님 몸 두루 하여 시방세계 충만하다는 뜻이다. 다른 여러 절집에도 걸려 있으나 회룡사 이 글귀는 각별한 듯하다. 비구니 주지가 지역사회 봉사에 공을 들인다고 하니 말이다. 여느 절집과 달리 바깥에 연등과 현수막이 거의 걸려 있지 않아 어수선함도 덜하다. 태조 이성계와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거기서 회룡사라는 이름이 비롯한 사실에 무심한 듯한 절집 풍경이 다소 적막해 보인다.


회룡사 관음.jpg 회룡사 관음상


도선사 입구 일주석에 이런 글귀가 있다: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 백 년 탐낸 재물도 하루아침에 티끌 된다는 뜻이다. 막상 절집 안으로 들어가면 온갖 연등과 현수막과 복전함이 시야를 메운다. 호국참회도량이라는 표현도 그리 달갑지 않다. 조선 말 세도가 김좌근이 후원했듯, 현대에 들어서도 육영수, 정주영이 드나들면서 정·재계 윗물로 적셨던 절집이다. 분위기는 어수선하다 못해 잡스럽기까지 하다. 도선과 청담 이야기도 비위에 거슬리니 다시 올 일 없겠다.

도선사 돈 풍경.jpg 도선사 호국참회원

화계사 대웅전 주련에 이런 글귀가 있다: 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 푸른 산은 옛 모습 그대로 흰 구름 속에 있네. 토씨 하나 바꾼다: 산은->산. 화계사 풍경도 도선사와 비슷하다. 정갈하지 않게 널린 각종 시설물이 청산 고요를 마구 깨뜨린다.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이 후원했던 역사를 품고 있어 그런지 한국불교를 세계에 전한 숭산 선사 이야기는 이 절집 서사에서 기이하게 낯설다. 숭산 이야기를 여기서 들을 며릴랑 없겠다 싶어 서울 둘레길로 되돌아간다.

화계사 대웅전.jpg 화계사 대웅전


화계사를 떠나 서울 둘레길을 걷다 보면 ‘빨래골’을 만난다. ‘무너미’로 불릴 만큼 수량이 풍부해 조선시대 궐 무수리들이 여기까지 와서 빨래하고 쉬기도 했다 한다. 너무 먼 곳이다 싶지만, 조대비가 나인들을 대동하고 자주 왔대서 화계사를 ‘궁절’이라 불렀다고 하니 아마도 빨래골은 그 일과도 관련 있을 듯하다. 다시 이 길을 걷는다면 청산 속에서 마마들 언어가 들려오는 화계사 쪽 말고 무수리가 마마들 뒷담화하는 빨래골 쪽 귀를 열겠다. 절집 지나치기를 재개한다.

빨래골.jpg 빨래골 개울물


내가 경험한 통속 불교는 확실히 저렴하다. 왜놈 제국에 국권을 빼앗긴 뒤부터 김명신 반란에 이르기까지 불교 지도층이 해온 짓을 보면 한심 무인지경이다. 사람이 풍경을 빚어내므로 저들이 서식하는 절집 풍경 또한 따라서 게저분하다. 이번에 돌아본 세 절집 가운데 회룡사가 그나마 단정해 보이지만 촘촘히 들여다보면 방치하거나 함부로 한 구석이 없지 않다. 그럴 바엔 차라리 숲이 지닌 자연스러움에 전경을 맡기면 어떨까. 그러기엔 절집 처마가 너무 오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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