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의의학 소설-
나는 ‘잘나가는’ 한의사다. 숙의치료자 ㅂㅇ의 대학 후배다. 어느 날 뜬금없이 내가 그에게 물었다.
“형님, 재미있으세요?”
그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재미있어.”
나 또한 주저 없이 그의 대답에 응했다.
“저는 재미없습니다.”
나는 이어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재미있으신데요?”
그는 이어 주저 없이 대답했다.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으로 들어왔다가, 사는가 싶게 사는 사람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잖아.”
내가 재미없는 까닭은 내 의료에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ㅂㅇ가 재미있는 까닭은 그의 의료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음 병을 숙의로 치료하고, 더 나아가 실생활 난제도 숙의로 풀어냄으로써 아픈 사람과 함께 삶 이야기를 써가기 때문에 재미있다. 그들 이야기는 물론 근원적으로 아프고 슬프다. 그 어둠을 통과해 빛으로 가는 과정이 보람 있으니 ‘재미있다’ 표현했으리라.
그들이 함께 빚어낸 이야기는 그러나 그러므로 베스트셀러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이제도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베스트셀러 등 뒤에서 벌어지는 통속한 음모가 그들 이야기에 들어설 여지란 근원적으로 없다. 이야기 나눈 익명인 각자만이 간직하는 워스트셀러이므로 내밀한 생명 네트워킹을 통해 함께 익명성을 꿰뚫고 나아갈 뿐이다.
ㅂㅇ 숙의 이야기가 그러하듯 그 인생 이야기도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았다. 인생 이야기가 베스트셀러로 되려면 승리나 기획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 인생은 패배와 방치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고통에 찬 신음과 웅얼거림이 뒤엉킨 치유 서사가 조증 숭배하는 이 사회에서 왁자하게 소비될 리 없다.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만이 소리소문없이 정독하고 재독할 뿐이다.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이 ㅂㅇ 이야기 속으로 들어오는 일은 그가 아픈 사람, 버려진 사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또는 포개지고 또는 쪼개지며 이야기들은 엮이고 기억된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시 사라지는 운명, 그 베스트셀러 천형은 그들이 짊어질 바 아니다. 그들을 아프게 하고 내버리는 삿된 힘들이 존재하는 한, 그들 이야기는 모질게 번져 가리라. 이 번짐을 ㅂㅇ는 ‘욼음으로 이루어가는 숙의 네트워킹’이라 부르더라. 사실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어서 ‘잘나가는’ 나로서는 적잖이 민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