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까지 시원한 한치물회

그리고 한라산 소주

by 사유경

짠내 가득한 서늘한 저녁 바람이 스며드는 제주 바닷가. 해가 기울며 바다는 점점 짙은 청빛을 띠고, 파도는 잔잔하게 모래를 적신다. 테이블 위에는 방금 막 손질한 한치물회가 놓였다. 얼음이 살짝 녹아든 매콤새콤한 육수 위로 잘게 채 썬 오이와 배가 아삭하게 떠 있고, 그 위에 막 썰어낸 하얀 한치 살이 꽃잎처럼 겹겹이 얹혀 있다. 해질녘 빛을 받은 한치의 표면은 투명하게 반짝이며, 마치 바다 속 햇살이 그대로 옮겨온 듯 빛난다.


옆에는 투명한 유리병 속 한라산 소주가 차갑게 땀방울을 맺고 있다. 병을 열자 가벼운 ‘딱’ 소리와 함께 시원한 알코올 향이 공기 속으로 번졌다. 잔에 소주를 따르면 꼴꼴꼴 소리와 함께 투명한 액체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바닥에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술잔을 가만히 들어 입술에 살짝 갖다대었더니 화한 알코올이 느껴진다. 손목을 탁 꺽어 한 입 가득 물고 목에 넘기니, 시원하고 투명한 알코올 향이 바닷바람과 섞여 가슴 깊숙이 스며든다. 목을 타고 내려간 시원함이 몸 안쪽까지 여름의 열기를 밀어내는 듯하다.


젓가락으로 한치 한 점을 집어 입에 넣는다. 살짝 차갑고 쫄깃한 식감이 먼저 이빨에 닿고, 곧 매콤새콤한 육수가 혀끝을 깨운다. 오이의 시원한 향과 배의 은은한 단맛이 그 뒤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그리고 그 모든 맛을 차가운 소주가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한치물회와 한라산이 오가는 사이, 바닷바람이 볼을 스친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잔잔한 배경 음악처럼 귓가를 감싸고, 해는 서서히 바다 속으로 몸을 감춘다. 붉은 빛이 수평선 위로 번져 물결에 반짝이며 멀리서는 밤 낚시를 준비하는 배가 저 멀리 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 순간, 시간마저 느릿하게 흐르는 듯하다. 젓가락과 잔이 오가는 간격조차 느슨해지고, 모든 감각이 오직 지금의 바다와 음식에만 집중된다.


이 한치물회와 한라산 소주는 그저 음식과 술이 아니다. 제주가 여름 저녁에만 내어주는, 한 조각의 바다이자 한 모금의 바람이다. 바다 내음과 함께 목을 타고 흐르는 시원함, 파도 소리와 어우러지는 매콤한 맛. 이 순간을 기억하는 한, 나는 언제든 이 여름 바다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