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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Jun 27. 2024

디악 깔라에?

이영운 시인/수필가



“디악 깔라에?”


“디악, 디악!”


참으로 오랜만에 나눠보는 동티모르 인사말이다. 얼마 전에 도내 유명 관광지에서 귀해 보이는 어떤 부인이 사진을 좀 찍어달라는 부탁에 셔터를 눌렀다. 함께 찍는 일행이 그녀를 제외하곤 모두가 외국인들이다. 그런데 어딘가 낯익어 보였다.



그녀에게 청년들의 국적이 어디냐고 물어보았더니 동티모르란다. 깜짝 놀랐다. 내게 익숙하다는 말은 그들이 키가 작고 얼굴빛이 까무잡잡하고 눈이 희게 빛나면서 순진한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디악 깔라에?(동티모르 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냈다. 네 청년들도 너무 놀라고 반가워하는 모습으로 “디악, 디악!(아주 잘 지내요!)” 하고 답례하며 내게 달려왔다. 그들도 놀랬을 것이다. 이 엉뚱한 외국에서 자기네 테툼어로 인사를 건넨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동티모르의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와 테툼어이다. 오랫동안 포루투갈의 식민 지배를 받았었다. 그리고 동티모르의 주요 민족의 언어가 테툼어다.



그녀의 설명에 의하면, 그 청년들은 모두 그녀가 운영하는 포항의 LNG 관련 공장에서 용접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아주 성실하여 이 번에 함께 제주로 휴가를 왔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일은 내가 교육자문관으로 근무했던 수도 딜리의 베코라 기술고등학교 졸업생들이었다.



나는 정년퇴직 후에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의 교육자문관으로 선발되어 아프리카 세네갈 교육부에서 2년 그리고 동티모르 교육부에서 1년간 교육자문 봉사활동을 했었다. 동티모르에 있을 때 주 업무가 베코라기술고등학교의 경영 자문활동이었다.



이 기술학교는 우리나라에서 200억을 투자하여 건축, 기계, 전자, 자동차, 컴퓨터, 전기 분야의 모든 최신 설비 투자를 한국의 최신 자재로 설치했다. 그리고 교사들은 모두 한국으로 초청하여 단기 연수를 마쳤었다. 이 엄청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성취하기 위하여 내가 이 학교의 경영 자문관으로 선발 파견되었던 것이다. 낡은 교사는 모두 새 교사로 리모델링했고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 학교 개축식 때는 동티모르 대통령 영부인, 총리 등 주요 국가 고위 관리가 모두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결국 이 학교는 대학을 포함해서 동티모르 전국에서 가장 우수한 시설을 갖춘 기술학교로 태어나게 되었다. 또 이 학교는 동티모르에서 유일하게 한국어가 필수 과목으로 지정된 학교이기도 했다. 대사님과 협의하여 한국어 취업반을 특별히 설치 운영했었다. 한국어 교사들이 헌신 노력으로, 한국어 취업 교육에 올인했던 학교였다. 그 결과 지금 한국에서 좋은 조건으로 취업하여 소위 ‘코리언 드림’을 실현하고 있어 보인다.



나는 이 학교에 근무하면서 6개 과목의 교육과정을 완성하고, 시설 하자를 매일 파악하여 수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끊기는 전기와 수돗물 등을 해결하는 일 등에 몰입하였다. 그러나 전기, 수도 등 기본 인프라가 너무도 빈약하여 교육에 차질이 생기는 일은 항상 나의 한계를 낳게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 곳에 있으면서도 몇 가지는 꼭 실천했다. 우선 교장을 비롯한 모든 교직원 식구들과 한 차례 이상 식사에 초대하여 가족 사정도 알고, 교육 내용도 파악하였다. 그리고 모든 교직원의 생일을 기록하여 생일날 아침 마다 찾아다니며 손 편지와 작은 선물을 주고 축하해 주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수업 중에 노크하면 그날아 자신의 생일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축하고 노래를 불러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곤 했었다. 또 교가라는 것이 없는 학교에 내가 작사하고 내 친구 교수가 작곡하여 최초로 교가를 지어 부르게 하기도 했었다.



동티모를 떠나면서 400여쪽의 ‘베코라기술학교 발전 계획’ 보고서를 발간하여 외교부, 교육부, 협력단 등에 배포하고 21세기 최신생국 동티모르를 떠나왔었다. 떠나올 때 이 학교는 동티모르에서 중학교를 졸업하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전국적인 학교가 되었으며, 딜리국립대학(한국의 서울대학교에 해당)에 가장 많은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교가 되었다.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그 청년들은 떠나며 크게 손흔들면서 “오불리가도!(감사합니다!)”하고 외친다. 긴 여운을 남기는 작별의 말과 뒤돌아보는 모습에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리고 강원도만한 작은 섬나라에 남겼었던 작은 흔적이 기쁨과 아쉬움으로 교차하면서 나도 모르게 어떤 행복감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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