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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주일보 Nov 24. 2024

리더의 품격

김성건, 제주특별자치도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처장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



지난 10월 작가 한강이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거장의 반열에 오르는 데 큰 역할을 한 30대 영국 번역가이다. 한국어를 공부한 지 3년 만인 2013년 ‘채식주의자’를 시작으로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을 번역한 그녀는 한국문학을 세계적으로 알리기 위해 필요한 번역의 힘을 보여 줬다.



‘레이싱 미캐닉’(Racing Mechanic). 요란한 굉음을 내며 시속 300㎞ 이상의 속도로 내달리는 자동차 경주장. 무섭게 달리던 경주차가 피트인(Pit-in)이라는 정비구역으로 들어온 순간 불과 몇 초 사이에 수리와 타이어 교체, 연료를 보충하고 다시 경주에 나설 수 있도록 하는 차량 정비 전문가를 이르는 말이다. 선수는 이들을 믿고 100분의 1초, 1000분의 1초 차이로 승부가 결정되는 자동차 경주에 나선다.



‘가이드 러너’(Guide Runner). 안대로 눈을 가린 시각장애인 육상선수와 ‘트러스트 스트링’(믿음의 끈)이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손목을 연결해 마치 한 몸처럼 함께 뛰며 그들이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도록 안내한다. 가이드 러너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결승선은 시각장애인 선수가 먼저 통과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기가 된 만큼 사회복지 현장에서는 그동안의 사업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를 마련해 그냥 지나치고 흘려들을 수 없는 땀과 눈물의 결과물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한 장애인 직업 재활시설의 원장은 지난 5년간 제주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고 함께한 청년 장애 농부들의 목소리를 생생한 기록으로 보고서에 담아 세상에 전하면서 ‘데보라 스미스’ 못지 않았고, 또 다른 원장은 2년 뒤 폐쇄가 예고된 시설임에도 장애인들의 숨은 재능을 찾아 그들이 작가로서 무대 위에 설 수 있도록 도와 ‘레이싱 미캐닉’에 다름없었다.



그뿐이랴. 3년 동안의 교육을 통해 놀라울 수준의 사진 작품을 전시하기까지 장애인들과의 믿음의 끈을 놓지 않은 원장은 ‘가이드 러너’ 그 자체였다.



올해에도 우리 주위에는 이들처럼 누군가의 꿈과 희망을 현실에서 이룰 수 있도록 돕거나 누군가 가장 높은 곳에서 빛날 수 있도록 조력하는 이들이 많았다.



마치 장미 한 송이를 위해 수북하게 모여 있는 안개꽃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리더의 품격’을 엿볼 수 있다.



2024년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리더’들은 한 해 동안 애쓴 성과를 드러내고 후회와 아쉬움의 크기를 줄이기 위해 정신없고 예민해질 시기다. 하지만 분주함 속에서도 늘 함께해 준 동료들,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게 무대 위 가운데 자리를 양보하고 더 큰 박수를 보내며 ‘품격’있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방법도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별은 거의 없어. 다 빛을 받아 반사하는 거야.”라던 어느 영화의 대사처럼 그것이 곧 자신을 빛내는 일이라는 걸 안다면 말이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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