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방영, 시인/논설위원
이호 방파제에 하얗고 빨간 말 모양의 등대들은 트로이의 목마를 연상시킨다. 어린 시절 신기한 옛날이야기로 읽는 호머의 오디세이,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그리스 군을 숨겨 트로이를 멸망케 한 목마,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가는 10년 뱃길에 그가 겪는 갖가지 모험.
어른의 눈으로 보면 현대인들도 오디세우스처럼 풍랑 이는 바다를 항해한다. 컴퓨터 바이러스 중 하나도 트로이의 목마였던가. 오늘의 목마들은 무엇을 숨겼는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 날의 괴물들은 더 교묘하게 우리들 심리를 공격하며, 오디세우스를 끌어당기던 유혹들도 사회의 저변을 파고든다.
로토파고스라는 나라에서 식사를 한 오디세우스의 병사들은 고향 가기를 포기하는데, 섭취한 음식물 성분이 만사를 잊고 황홀경에 빠지도록 작용한 때문이다. 이로 인해 ‘로토스를 먹는다’는 말은 모든 시름을 잊어버리는 상태를 뜻하고, 시인들은 망각의 열매를 그리워하는 시를 쓰게 되었다. 슬픔에 눌려 근심 걱정으로 쇠잔한 인간은 만물이 휴식하는 시간에도 일하며 고통 받는다는 관점이다. 테니슨은 ‘이 슬픔에서 저 슬픔으로 전전하며, 인간은 방황을 멈추지 않는데, 비옥한 토양에 깊숙이 뿌리박은 과일이나 꽃은 피어난 곳에서 익고 시들어 떨어질 뿐 애쓰지 않는다’고 했다.
3년째 행동의 제약 속에서 변이를 일으키며 번성하는 바이러스에 지친 우리도 망각의 열매가 그리운 것 같다. 누군가 달콤한 시간을 마련해서 지쳐버린 삶을 대신 이끌어 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현실은 노래하는 사이렌처럼 사기 집단의 낚싯대가 사방에 드리워져 있고, 방안까지 들어온 시장은 스크린 앞에서 세뇌당한 듯 신용카드번호를 보내며 불필요한 구매를 부추긴다.
오디세우스는 키르케가 베푸는 술잔치에 1년 동안 고향을 잊고, 영생불사의 몸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칼립소와는 7년을 함께 산다. 영원한 청춘, 불멸의 존재는 인류가 버리지 못하는 오랜 꿈이다.
지하 세계를 찾아서 자신의 미래에 대한 예언을 듣는 오디세우스처럼 현대인들도 자신의 미래가 궁금하여 점을 쳐 본다. 또한 바람을 지배하는 자의 도움으로 고향 앞바다까지 갔던 오디세우스는 그의 진심을 의심하는 부하들이 보물인가 보려고 바람들을 가둔 자루를 풀어버려서 한 순간에 머나먼 바다로 되돌아가고 만다. 우리 역시 믿었던 사람을 불현듯 의심하기도 하고, 갑자기 동료들에게 모함을 당하거나 친구들의 오해로 애써 완성 단계에 이르렀던 일이 무너지기도 한다.
험난한 항로를 거치고, 사람을 잡아먹는 자들의 땅에서 부하를 다 잃은 오디세우스는 어느 왕의 호의로 고향에 온다. 고향에 와도 그는 아내에게 구혼하던 자들을 물리쳐야 하며, 구혼자들의 가족들에게 고소당하여 재판을 받고 국외로 추방된다. 우리 사회에서도 정당한 응징이라 할지라도 법의 심판을 거쳐야 하고, 법을 악용하는 파렴치한들이 위세를 떨치는 일은 허다하다.
3000여 년 전의 오디세우스처럼 우리도 삶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한 입에 삼켜버릴 듯 달려드는 거대한 힘에 시달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만사를 잊은 채 뭔가에 빠져서 삶을 내동댕이치고 싶어질 때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을 되찾고 의혹을 물리쳐야 살길이 보인다.
이제 또 어떤 괴물과 대처해야 할지 모르지만, 용기를 잃지 말고 바다를 응시하자, 아직 세상은 끝나지 않았고 항해는 계속 이어질 것이므로.
http://www.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91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