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경순, 문학박사/논설위원
태풍급 돌풍이 불던 지난 3월 말, 제주시 도련동에 있는 ‘수상한집 광보네’를 찾았다. 이름과 달리 밖에서 바라본 그곳은 수상할 것 하나 없는 그저 평범한 집이었다. 내부로 들어서면 먼저 무인카페와 마주하게 된다.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3평 남짓한 공간에 3개 정도의 탁자와 소파 그리고 의자가 놓여 있다. 차 마시는 공간이다. 남서쪽 전면 통유리 너머로 사정없이 흔들리는 오죽군락이 보인다. 저항하듯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오죽의 몸부림에서 수상한 집의 서막이 시작된다.
이 공간을 등지고 보니 또 하나의 집이 시야에 들어왔다. 완전한 형태를 갖춘 제주형 함석집. 집이 집을 품고 있다. 특이한 것은 현관문이나 안팎으로 출입하는 문이 없다. 창문마다 혹은 바닥에 수상한 글들이 잔뜩 쓰여있다. “누가 빨갱이를 만듭니까? 누가 죄를 만들고(강희철)”, “우리 모두가 강광보다” 이 글들을 눈에 담으며 집 안으로 들어서면 신문기사로 도배 되어 있는 방에 닿는다. 벽면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기사 제목도 수상하다. “발가벗긴 채 물고문·전기고문”, “아내 진술 강요 간첩 삼아 30년 전 자수한 간첩이 고정간첩 둔갑 불법적 연행·구금…월북 시기 조작도”
수상한 집, 주인 강광보 씨는 조작 간첩 사건의 피해자다. 그는 1960년대 초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18년 만인 1979년 제주로 강제추방됐다. 입국하면서 강 씨는 간첩 죄목으로 경찰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런데 7년이 지난 1986년 같은 죄목으로 보안사로 끌려갔고, 심한 고문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하게 된다. 그는 이렇게 간첩으로 조작되어, 7년을 복역하고 나서야 출소했다. 강 씨는 시민단체 ‘지금여기에’와 뜻있는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재심청구를 했고, 2017년에서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무려 31년 만이다.
수상한 집은 강광보 씨가 본인 소유인 집과 토지, 국가로부터 받은 배상금을 투척, 그 외 215명의 시민의 후원금 등으로 건립되었다. 집 속의 집은 강광보 씨의 부모님이 강 씨를 위해 지은 집이다. 이 집을 부수지 않고 살렸으면 좋겠다는 강 씨의 마음을 담아 이곳은 전시관으로 만들고 그 집을 둘러싸서 3층 집을 건축했다. 1층은 원래 있던 집에 조성된 전시관과 카페, 2층은 게스트하우스, 3층은 세월호 기억 공간이다.
2층 게스트하우스로 오르는 계단에 서면 강 씨의 집 지붕이 내려다보인다. 흡사 감옥 쇠창살을 연상시키는 계단 난간대 사이로 보이는 지붕에 납작하고 둥근 시계가 박혀있다. 예사롭지 않은 광경이다. 시간을 돌려놓고 싶은 걸까. 어쩌면 조작 간첩 피해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그의 바람을 담았을지도 모르겠다.
수상한 집은 국가폭력과 불법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만든 공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알고 기억해야 한다는 강광보 씨의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현재 수상한 집에는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인 강 씨가 거주하고 있다. “진실을 숨길 수 없고, 정의를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바람처럼 감춰진 진실이 세상 밖으로 드러나고, 국가폭력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우리 이웃에 이런 폭력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두 번 다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억하는 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이다. 그리고 기억은 반드시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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