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C&C 국토개발행정연구소 소장/ 논설위원
1972년경 제주를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를 외국인을 상대로 한 국제 관광지로 개발할 것을 결심하고, 귀경 후 제주도관광종합개발계획의 입안을 지시했다. 이후 제주도에 1000억 원의 재정투자가 배정됐다.
이어 1976년에는 500억 원을 투입했고, 중문 관광단지 개발을 서둘렀다. ‘5·16 도로(제1횡단도로)’개설, 어승생 수원지 개발 등 지역개발의 기반 또한 다져지기 시작했다. 육지부와의 해상교통을 개선하기 위해 악천후에서도 제주해협을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제주·부산, 제주·목포 간 양 갈레의 대형여객선 노선을 개발하였고, 1963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육지부와의 원활한 운항이 개시됐다. 이처럼 육지부와의 대형 여객선 취항과 더불어 도내에서도 크고 작은 제주관광 발전을 위한 획기적인 인프라 조성 사업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제주전역의 육상 교통과 물류 수송이 원활하기 위한 기간도로 건설도 5·16도로를 비롯하여 일주(一周)도로, 중산간도로 및 1100도로 등 총 4개의 국도가 중앙정부에 의해 건설되고 개통됐다. 그 결과 이후 교통망이 가장 잘 발달된 지방자치단체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이런 인프라 확충으로 1978년에는 제주방문 관광객이 사상 최초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 제주도는 인프라 확충 개선을 통해 세계적 관광지로서 일취월장 성장 발전해왔다.
1964년 2월 중앙정부는 제주도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감귤 중심의 산업정책을 제시했다. 타 지방과 농업 활성화 여건이 다른 만큼 식량증산에 역점을 둔 농업정책을 지양하고, 보다 지역 여건에 부합되고 상대적으로 수익성 높은 감귤 등의 재배를 독려했다. 특히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방정부에 특별 지시하기도 했다. 그 결과 1965년부터 감귤 식재 붐이 제주도전역에서 조성되기 시작했다. 1968년부터 감귤재배를 농어민 소득증대 사업으로 책정하여 감귤과수원 조성 자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1969년부터 획기적인 감귤 증산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마련됐다.
1964년에 413㏊에 불과하던 감귤재배 면적이 1974년에는 1만1200㏊에 달해 그 재배면적이 27배가 되었다. 이는 전국의 과수재배면적 중 사과재배에 이어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전례 없는 감귤 주 생산단지로 제주도 전역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감귤은 도민의 주된 수입원이자 제주를 상징하는 농산품이 되었다. 1973년에 감귤재배 농가는 3만6073농가로 전체 농가 3만9822농가 중 91%에 해당하면서, 감귤이 대표적 농산품 및 관광 상품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말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를 찾았고, 도정의 건의에 따라 중앙정부는 새로운 제주 발전전략을 제시했다. 그것은 제주의 모든 것을 변혁하는 ‘제주도의 국제자유도시화 전략’이었다. 그 요지는 ‘대내외 급변 상황을 맞아 범국가 차원에서 제주도를 물류와 비즈니스의 거점으로 조성함은 물론, 첨단과학·교육·관광·의료 따위를 지역기간산업으로 하여 종합적으로 육성·발전시키기 위한 국제자유도시 발전전략’이었다. 이에 따라 지난 20여 년 동안 지방정부 주도로 제주발전 전략을 줄기차게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그 지속가능성은 전혀 돋보이지 않는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된 감을 지울 수 없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전환점 모색이 절실해 보인다. 그리고 현재 문제가 뭔지 재검토하고 대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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