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연은 없다

by 제주일보

안재철,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논설위원


11.jpg


불교의 한 주장에 따르면 1초는 75刹那(찰나)이며, 1찰나는 16念(념)이라고 한다. 이것을 근거로 계산해보면, 사람의 마음은 1초에 1200번(75찰나×16념) 바뀌며, 하루로 치면 1억368만번(1200념×24시간×60분×60초)의 마음이 바뀐다고 할 수 있다.



즉 순간 이전의 마음은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은 순간 이후의 마음일 수 없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의 마음이 동일하게 이어질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치 물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듯, 바로 이전 순간의 마음이 사라질 때, 동시에 다음 순간의 마음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며, 그 마음이 순간순간 이어져, 한동안 그 마음이 그 사람의 마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순간은 너무 짧기 때문에, 사람이 마음을 순간적으로 의식하여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마지막 순간의 마음에 따라 다음 생의 삶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다. 즉 1초에도 1200번 변하는 마지막 순간의 마음(念)이 선하면 선한 생명으로 태어나고, 마지막 순간의 마음이 악하면 지옥이나 축생과 같은 악한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평생을 남을 속이거나 남의 생명을 출세의 도구 정도로 생각하며 나쁜 짓만 일삼다가도 죽어가는 짧은 순간에 좋은 마음을 쓰면 좋은 생명으로 태어난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토록 짧은 순간은 우리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그것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맡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이 스스로 그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단지 體化(체화)되어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행해질 수밖에 없게 되어야 한다.



지난 포르투갈과의 월드컵 경기에서 결승골을 도운 손흥민은 말하였다.



“골을 치고 상대의 골문으로 질주할 때, 상대의 수많은 선수가 나를 에워쌌는데, 그 순간 한쪽에서 달려 들어오는 황희찬을 보았고, 바로 앞 수비수의 가랑이가 열려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곳을 통해 가볍게 골을 황희찬에게 밀어주었기 때문에 골을 완성할 수 있었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손흥민이 좌우 발을 다 쓸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안 듣는 발인 왼발을 집중적으로 연습시켰고, 또한 공을 잡고 뛸 때면 수없이 고개를 흔들며 좌우를 살피게 하였다고 한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고 동료와 함께 하는 경기이기에, 공을 받아줄 수 있는 동료의 움직임을 항상 살피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짧은 순간의 판단은 우리가 의식한다고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 항상 갈고 닦으며 내 몸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지 않으면 결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사실 발재간 등만을 비교한다면, 다른 선수들과 손흥민은 별로 차이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손흥민을 손흥민이게 하는 것은, 아주 빠른 속도 외에도 갈고 닦은 순간의 판단력, 그리고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보다 모두의 성공을 먼저 생각하는 인성 등인 것 같다.



말한다고 모두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싸한 옳은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항상 생각하며 갈고 닦지 않으면, 아무나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이 어지러우니 나도 따라 돈다. 선동하는 말만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개돼지 취급받지 않고 사람으로 대접받고자 한다면 저들의 말을 믿지 말고 행동을 보아야 한다.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춘하추동-슈톨퍼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