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과 판례-75년 만의 무죄판결

by 제주일보

김정은, 법무법인 결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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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제주 4·3 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 출범한 후, 제주 4·3 사건 군사재판에서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수형인 명부에 기재된 희생자들에 대한 직권재심이 진행되고 있다. ‘재심’이란 확정된 판결에 문제가 있는 경우 소송 당사자 등의 청구를 받아 다시 심판하는 절차로, 형사소송법에서는 유죄가 확정된 형사사건에 재심 사유가 발생한 경우 당사자나 법정 대리인, 유족뿐 아니라 검사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게 규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며, 합동수행단이 출범하기 전에는 4·3 사건 희생자의 유족들이 직접 변호사를 선임해 관련 자료들을 직접 수집해가며 재심을 청구했다.



검사는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 ‘피고인에게 죄가 있으니 형을 선고해달라’는 취지로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합동수행단의 검사들은 ‘피고인에게 죄가 없음에도 억울하게 유죄판결을 받았으니 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여 바로 잡아 달라’는 취지로 재심을 구하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에서는 4·3전담 재판부를 구성하고, 제주지역 변호사 6인을 직권재심사건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해 지난 1년간 27번의 재심재판을 진행해 왔다. 필자 역시 위 국선변호인 중 1인으로 선정돼 현재까지 약 6건의 재심사건을 진행했고 170명의 피고인에 대해 무죄판결이 확정됐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검찰에서 제출한 기록뿐 아니라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4·3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됐다. 희생자 한 분 한 분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던,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잡혀갔고,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도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생활까지 했다.



첫 재판을 앞두고, 직권 재심 재판에서 과연 변호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몹시 고민했다. 이제야 4·3 사건에 대하여 알기 시작했기에, 4·3이 가지는 의미를 깊이 안다고 할 수도 없고, 그 오랜 기간을 견뎌온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픔이나 상처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섣불리 아는 체하는 것이 오히려 피고인들과 그 유족들에 대한 실례가 될 것 같았다. 이에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형사소송에서의 변호인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고, 피고인들이 처음으로 헌법과 법률에 정한 진정한 의미의 재판을 받는 것이기에 피고인들에게 집중하고자 각 피고인들의 이름과 당시의 상황에 대해서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몇 차례나 재심 재판을 진행한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법원에서는 벌써 27회나 반복하는 같은 내용의 재심사건이지만, 재심재판을 받는 각 피고인들에게는 75년이나 흐른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받는 진정한 의미의 첫 재판이기 때문이다.



제주 4·3 당시에도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존재했지만, 그 절차와 취지가 모두 무시된 결과 수천 명이 희생됐고, 수만 명에 이르는 그 가족들이 지난 75년간 한 맺힌 세월을 살았다. 지금에 이르러 이를 바로 잡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또 법이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적법한 절차의 재판을 통해 받은 무죄판결이, 희생자들과 유족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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