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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판례-소송도 산으로 간다.

by 제주일보

김정은, 법무법인 결 파트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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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변호사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변호사 업무를 통해서 재미를 느끼거나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저마다 다르다. 어떤 변호사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돼 좋다고 하고, 또 어떤 변호사는 소송에서 승소할 때의 기쁨이 가장 크다고 한다.



필자의 경우는 소장이나 준비서면 등과 같이 재판에 제출되는 서면을 작성하는 일이 가장 좋고, 이를 통해서 재판부가 설득됐다는 것을 확인할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 같다.



주로 변호사가 하는 업무는 송무이고, 현재 재판 시스템은 주로 서면을 통해 양 당사자의 주장을 하는 형태이다 보니, 글을 많이 쓰는 직종 중 상위권에 변호사가 있을 것이다. 다행히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해서 비교적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지만, 잘 정리되지 않은 상대방 서면을 확인하는 일은 몹시 괴롭다. 같은 내용을 반복한다던가, 엉뚱한 내용을 쟁점인 양 부각해 소송을 끌고 간다거나 하면 애초에 쟁점이 아니더라도 그 부분이 왜 쟁점이 아닌지 등 쓰지 않아도 될 내용을 다시 작성해야 하다 보니 아무리 글쓰기를 좋아한다 해도 괴로울 때가 있는 것이다.



최근 판결을 받은 사건이다. 갑이 금융기관으로부터 5억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이 중 3억원은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았고, 나머지 2억원은 신용대출이었다. 그런데 갑은 원금은 커녕, 이자도 전혀 내지 않아 담보로 제공된 부동산에 대해서 경매절차를 진행해 금융기관에서 2억원 정도 변제받았고, 담보대출로 진행했던 1억원의 대출과 나머지 신용대출 2억원이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였다.



시효의 문제가 있어 금융기관에서는 2억원의 신용대출에 대해서 먼저 청구를 했고 금융기관의 대리인으로 선임돼 소송을 진행했다.



구체적으로 밝힐 순 없지만, 상대방이 금융기관과 위와 같은 대출 약정을 할 때 몹시 복잡한 사정이 있었는데, 상대방은 법원에 그 복잡한 사정을 모두 일일이 밝혔고 부동산 경매로 2억원을 변제했다는 사실만 반복하며 금융기관의 도덕성을 논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상대방이 주장하는 그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 우리 측은 왜 할 말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렇다고 그 사정에 대해서 똑같이 반박하기 시작하면 소송은 산으로 간다.



게다가 하필이면 부동산으로 변제한 금액과 신용대출로 남아 있는 금액이 똑같이 2억원이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재판부에서도 그 2억원을, 이 2억원으로 생각해버릴 수도 있다. 재판부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명확히 소명하라고 한 것을 보면 약간 혼란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럴 땐 오히려 긴말이 필요 없다. 간결하고 명확하게 상대방이 대출 약정을 하고 대출금을 받은 사실, 그리고 변제된 2억원은 별도의 대출금에 대한 변제라는 사실, 여전히 신용대출금 2억원은 변제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주요 증거와 함께 다시 한번 강조했다. 다행히 승소했고 판결문에 이 내용이 그대로 기재됐다.



당연히 이기는 사건은 없다.


※ 본란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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