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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츠윌리엄 다아시 Nov 08. 2024

가르미슈

독일

 9시 30분 기차를 타기로 계획하고 전날 늦게 잠에 들었었다. 하지만 8시가 되기도 전에 깨어버려 살짝 짜증이 났다. 일어나기 전 DB 앱에서 기차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보았는데, 파업 때문에 9시 30분 기차가 취소되었다는 공지를 발견했다. 10시 30분 기차를 타면 너무 늦게 때문에 8시 30분 기차를 타기로 정했다. 일찍 깼던 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러나 기차 출발까지 1시간도 안 남았기 때문에, 안심할 틈은 없었다. 급하게 시리얼로 아침을 때우고 중앙역으로 갔다. 하필 U2가 이날 연착해서 기차를 놓칠 뻔했으나, 열심히 뛴 덕에 가까스로 올라탈 수 있었다. 내가 타자마자 기차 문이 닫히고 출발했다. 추운 날씨에 갑자기 뛰니 목에서 피맛이 났다. 무사히 기차에 타서 그런가 마냥 기분 나쁜 맛은 아니었다.

 몸이 다 풀린 상태로 가르미슈 스키장에 도착했다. 우선 스키장 바로 옆에 있는 Skischule Garmisch-Partenkirchen에 가서 스키용품을 빌렸다. 스키복—역시 Jack Wolfskin 바람막이는 만능이다—과 장갑, 아마존에서 8유로에 구입한 고글을 제외한 모든 장비를 빌렸다: 스키와 폴, 부츠, 헬멧. 합산하니 무려 55유로나 되어 순간 결제가 망설여졌다. 그래도 힘들게 왔으니 마음을 굳게 먹고 긁었다. 혼자 낑낑대며 장비를 착용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덩치 큰 유럽인들은 능숙하게 착용하고 있었다. 중학생 때는 스키 장비가 이렇게 안 무거웠던 것 같은데, 8년 만의 스키이다 보니 장비 하나하나가 더욱 무겁고 불편하기 느껴졌다.

 우여곡절 끝에 준비를 마치고 매표소로 갔다. 조금 기다렸다가 딱 정오가 되고 오후 티켓을 48유로에 구매했다—전일 티켓은 12유로 더 비싸다. 카드를 찍은 뒤 곤돌라를 타고 Garmisch-Classic으로 올라갔다. 동양인만 없었지, 그 외의 다양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눈길을 끌었다. 평지에서 슉슉 스키를 끌고 이동하는 모습에 벌써부터 기가 눌렸다. 오랜만에 스키를 타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끙끙되던 초라한 내 모습은 능수능란한 아이들과 비교되었다.

이용 가능한 리프트와 코스가 표시되어 있다 | 리프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유럽의 스키 코스 난이도는 우리나라와 다르다. 초급, 중급, 상급—파랑, 빨강, 검정—으로 나뉘어 있는 것은 똑같다. 다만 초급이 초급이 아닐 뿐이다. 유럽에서의 초급은 우리나라에서의 중급 혹은 그 이상이라 볼 수 있다. 애초에 알프스 산맥 그 자체를 스키장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만한 경사를 가진 코스를 만들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중학생 시절 우리나라에서 어쩌다 상급을 딱 한 번 타보았던 것이 떠올랐다. 더구나 나 나름대로 운동신경이 제법 뛰어나다고 자부했다. 그래서 이곳 초급에서 충분히 스키에 적응하여 한 시간 정도 뒤에 중급으로 넘어가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알프스 산맥을 그대로 이용한 스키장답게 경치 또한 아름다웠다. 리프트를 타면서 주변에 펼쳐진 설산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리프트에 내려서도 그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을 소비했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일단 A자 유지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S자도 시도해 보았다. 테니스로 단련된 허벅지 덕분인지 큰 어려움은 느끼지 않았다. 물론 바바리안들의 눈에는 엉성하게 보였겠지만, 나 나름대로 S자를 그리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경사가 점점 급해져 S자가 삐뚤빼뚤해지기도 했지만, 역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스키를 틀어 멈춘 뒤에 다시 내려가며 속도를 조절했다. 가다 멈추다를 몇 번 반복한 끝에 초급 코스를 완주해 내는 데 성공했다.

 이후 서너 번을 더 같은 코스를 탄 끝에 기어코 스키에 적응했다. 스키를 타면서 주변 경치를 감상할 여유도 생겼다. 사방이 설산과 구름으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에 압도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초급은 정복했겠다 자만하고 중급 코스로 과감히 넘어갔다. 바짝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시작은 순조로웠다—초급 코스와 공용인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빨간색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니 경사가 급격히 심해지고 눈은 단단해졌다. 왼발 오른발 무게중심을 옮기는 주기도 짧아지면서 S자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결국 내리막 중턱에서 아주 제대로 나뒹굴었다. 스키 두 짝 모두 내 발에서 떨어져 손에 닿지 않는 위에 머물러 있었다. 내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추하다는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일단 크게 다친 곳이 없다는 것에 안도하고, 스키를 다시 신기 위해 엉금엉금 오르막을 기어올랐다. 자기 집 안방마냥 편안하게 내려가는 독일인들이 나를 보고는 "Alles gut?"이라며 안부를 물었다. 나 또한 "Alles gut."이라 답했지만, 속으로는 매우 창피했다. 스키 한 짝을 겨우 주웠는데, 한 소녀가 와서 더 멀리 떨어져 있던 스키 한 짝을 내게 건네주었다. 애써 "Danke schön!"이라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운동신경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을 쳤다. 힘겹게 스키를 신고 터덜터덜 A자로 천천히 내려왔다. 앞으로 빨간색 표지판은 거들떠도 보지 않기로 했다. 지친 몸과 마음을 다스린 후 초급 코스를 몇 번 더 타다 스키를 반납하러 갔다. 스키 역시 만만한 스포츠가 아니었다.

리프트를 타면서 바라본 광경 | 눈앞에 닿지 않는 병풍을 바라보며 스키를 탈 수 있었다

 정말 열심히 타서 기진맥진한 상태였지만, 16시도 채 되지 않았었다. 시간도 남고 스키 티켓도 아까워 바로 옆에 있는 Zugspitze—Top of Germany—에 가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티켓으로 정상까지 가는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애매한 시간대라 그랬는지, 나와 케이블카 직원 단 둘이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설산들을 가로지르는 엷은 구름을 감상하니 금방 도착했다. 정상까지는 찬바람을 뚫고 조금 더 걸어가야 했다. 전망대 끝에 딱 올라선 순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울퉁불퉁한 산맥들과 그 사이 구름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노르웨이에서 봤던 피오르드가 떠올랐다. 고도가 1000m 이상 높아져서 그런지, 산을 가로지르는 것은 물이 아닌 구름인 것만 달랐다. 색깔과 기온만 달랐지, 장엄함은 진배없었다.

Zugspitze로 가는 기차에서 찍은 마을 사진 | 산 뒤로 수줍게 숨어버린 태양
Zugspitze만의 독특한 전망대 | 엷게 펼쳐진 구름이 흐르는 강물처럼 입체감이 살아있다

 끝없이 펼쳐진 알프스 산맥을 실컷 구경하고 지상으로 돌아가는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이미 5분 전에 한 대가 출발했던 터라 3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나가서 경치를 조금 더 구경하려고 했지만, 너무 추워 그럴 의지는 금세 식어버렸다. 내려올 때는 올라올 때와 다르게 케이블카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 막차였기 때문에 산꼭대기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해발 3000m 가까이 되는 곳임에도 어김없이 Biergarten은 우리 곁에 있다—이 탔기 때문이다. 케이블카는 뿌연 구름을 뚫고 내려왔다. 스키장으로 돌아가는 기차가 끊겨 1시간 넘게 터벅터벅 걸었다. 스키장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말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슐리어제에서 트래킹 하면서 주고받았던 "Servus!"라는 인사가 사소하지만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안 그래도 춥고 배고팠는데 외로움까지 더해져, 내 꼴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Zugspitze 케이블카 | 해가 지니 구름이 더 가라앉았다

 뮌헨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탈 때는 이미 하늘은 완전히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하루종일 스키를 탔던 사람들은 해가 지기 전에 다 돌아가서 그런가, 기차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고된 일정을 마치고 따뜻한 집에 돌아왔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알프스 산맥에서 스키 한 번은 타야지라는 만용을 부린 대가에 따른 피곤함은 극에 달했다. 라면 한 봉지로는 택도 없을 만큼 허기졌기 때문에, 너구리와 짜파게티 1봉지씩으로 짜파구리를 만들어—Paulaner Salvator와 함께—야무지게 먹었다. 스위스로 가기까지 남은 닷새 동안 아프지 않도록 뮌헨 안에서 요양하기로 했다.

 아침 뮌헨 중앙역부터 스키장까지 스키복으로 중무장한 채 한쪽 어깨에 스키를 메고 다니는 아이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뮌헨에서 살면서 골목 어디서든 공을 차고 놀고 뛰어다니는 아이들, 테니스장에서 아버지랑 랠리 하는 아이들도 여럿 볼 수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정말 부러웠다. 초등학생 시절 공부가 주인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에서는 여러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문화가 뿌리내려 있다. 단순히 스포츠를 많이 즐기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즐길 수 있도록 부모가 이끄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더구나 몇 달 전, 초등학생 시절 4년 정도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친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은 적이 있다. 집(단독주택) 안에서든 학교에서든 짧지만 다양한 운동을 접해보았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운동들도 이것저것 해본 것이 참 멋있고 부러웠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살아오면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다양한 활동적인 경험이 부족했다 보니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먼 미래에 자식을 키울 때는 최대한 시간을 내서 자식과 같이 운동을 즐기는 그런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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