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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2

프랑스

by 피츠윌리엄 다아시

첫째 날

파리 오를리 공항에는 21시가 다 되어서 도착했다. 제1공항이 아니어서 그런가 밤이 되니 매우 한적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빌레쥐프까지 7번 트램을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어, 대중교통 1회권을 구매하면 되었다. 금방 해결될 거 같았던 이 과정에서 예상치 못하게 지체되었다. 교통권을 사는 기계들이 두어 개 있었는데, 모두 기존의 교통카드에 충전하는 옵션뿐이었다. 1회권을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직원들에게 물어보려고 했으나, 대부분의 안내 데스크는 닫았고 남아있는 직원들은 프랑스어로 답해주었다.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만의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영어를 쓰지 않은 것인데, 이는 그들의 싫증난 표정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는 수 없이 표지판에 의존하며 떠돌다가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아는 착한 청소 아주머니께서 친절히 알려주셨다. 지하철역까지 가면 거기에 표를 살 수 있는 기계가 있다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지금 보면 정말 당연한 사실인데, 너무 피곤했는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지하철역이 많이 멀어 미리 표를 끊고 가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었다. 어쨌든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지하철역으로 한참을 걸어가서 표를 샀다. 이렇게 불필요한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마지막 숙소는 편하게 한식을 먹을 수 있는 한인 민박(파리 사랑 민박)으로 예약했다. 현관 앞에 다다랐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나와 우리를 곰살궂게 맞아 주었다. 3층까지 짐을 들어주고 방을 안내해 주었다. 큰 방 하나를 배정받았는데, 그동안 집 전체를 써왔던 우리에게는 많이 좁게 느껴졌다. 원래 화장실이 공용이었지만, 이 기간 손님이 우리밖에 없어 전용 화장실이나 다름없었던 점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이러한 불편함에도 한인 민박을 선택한 이유에는 저렴한 가격에 더해 조식과 석식이 모두 한식으로 제공된다는 점이었다. 오래 여행할 때면 한식이 꼭 필요한데, 식당에서 사 먹는 것은 비싸고 직접 요리해 먹기에는 귀찮아서 이렇게 한 번씩은 민박에 들러 주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아쉽게도 이날은 너무 늦게 도착한 터라 석식을 먹을 수는 없었고, 대신 주인아주머니가 컵라면을 끓여 주었다. 군 시절 기억 때문에 컵라면을 싫어하지만, 이날은 워낙 피곤했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둘째 날

에펠탑 - 바스티유 광장 - 빅토르 위고 저택

된장찌개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여유롭게 숙소를 나섰다. 교통카드를 사고 에펠탑으로 가기 위해 Place d'Italie에 내려 환승하려고 했다. 6호선으로 갈아타고 의자에 앉는 순간, 어머니가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멍하니 서계신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인가 여쭈어 보니 휴대전화가 없어졌다고 하셨다. 지하철 안에서 동생 사진을 찍으시고 주머니에 넣은 것까지 똑똑히 기억하셨다. 아마 열차에서 내릴 때 우리를 주시하고 있던 얼굴 모를 누군가가 그 주머니에 손을 슬쩍한 것 같다. 여기서 나까지 당황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침착함을 유지하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우선 실수로 흘렸을 가능성을 열어두고, 보이스톡을 걸면서 Place d'Italie로 되돌아가 찾아보았지만 역시나 없었다. 그래서 동생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원이 꺼져 있었다. 소매치기범이 위치 추적을 막기 위해 바로 전원을 껐다고 확신했다. 경찰에 신고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한국 주프랑스한국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유감스럽게도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신고해도 되찾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보험사에 신고 서류를 청구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고하는 것을 추천해 주었다. 현지 경찰서에 가보는 것도 나름 이색적인 관광이라 생각하고 가장 가까운 13구 경찰서에 가기로 했다.

보안 검사를 받고 신청서를 작성한 뒤 의자에 대기했다. 현지인도 몇 명 대기하고 있었는데, 20분쯤 뒤 한 여경이금발과 동그란 눈을 가진 건강한 서양 미인이었다—우리를 불렀다. 그녀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간 뒤, 상황 설명을 하고 인적 정보와 현장 상황 등에 대해 기술했다. 신고서를 작성하면서 경찰관과 잡담을 나누었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North Korea에서 왔다는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고, 그녀가 BTS에 대해 꽤 알길래 아이돌 이야기도 살짝 했다. 최대한 밝은 분위기를 유지하여 어머니가 이 일로 우울해하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아무튼 차근차근 서류 작성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경찰서를 나왔다.

한인 민박의 최대 장점 | 경찰서에서 작성한 범죄피해 사전신고서

어느새 11시가 넘어있었다. 바로 점심을 먹으러 Bistrot Victoires라는 식당에 갔다. 유명한 맛집임을 증명하듯, 내부는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힘겹게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지만, 맛은 기대 이하였다. 비싸지 않고 맛있었던 이탈리아의 음식들 때문에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오리 튀김은 짰고, 비프 부르기뇽은 질겼다. 평소에 궁금했던 달팽이 요리인 에스까르고를 먹어보았다는 것이 의의를 두었다. 물론 에스까르고도 그저 바질 소스를 뿌린 큰 다슬기에 불과했다.

이후 파리의 상징인—기존 계획이라면 오전에 가야 했을—에펠탑을 보러 갔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트로카데로 정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물론 관광객 못지않게 호객 행위를 하는 아저씨들도 많았다. 짙은 구름 때문에 우뚝 솟은 에펠탑이 그다지 멋있지 않았다. 맑은 날에 다시 와서 감상하기로 하고 에펠탑 근처로 이동했다. 돈을 내면 에펠탑 위로 올라갈 수 있지만, 날씨도 흐리고 개선문에서 경치를 볼 수 있으니 그러지 않았다. 대신 에펠탑 바닥 정가운데로 가서 내부를 뜯어봤다.

번지르르한 겉모습과 그에 미치지 못한 맛 | 에펠탑 밑 한가운데에서 찍은 셀카

오전에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시간이 애매해져 시간이 조금 떠버렸다. 굳이 바쁘게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는 여유롭게 보내기로 결정했다. 앵발리드 근처 Le Moulin de la Vierge라는 빵집에서 크루아상을 먹으며 계획을 다시 짜기로 했다. 여동생이 빵을 무척 좋아해서 빵을 먹을 때의 행복한 표정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대전 사람으로서, 당당히 성심당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는 맛이라고 평가를 내렸다. 어쨌든 3명 중 2명이 크루아상을 맛있게 먹었으니 된 거다.

이후 바스티유 광장과 보주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빅토르 위고 저택에 갔다. 개인적으로 빅토르 위고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름이 아니라 그의 소설이 유독 잘 안 읽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잘 풀다가 뜬금없이 자기 생각을 독자에게 강요한다. 나는 애처로운 콰지모토에 공감하려고 "파리의 노트르담"을 읽은 것이지 파리의 건축 양식에 대해 알고 싶어서가 아닌데, 꼰대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음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곳에 간 이유는 정말 단순하게도 입장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외로 화려했던 그와 그의 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지만, 굳이 이곳에 갈 바에 카페에 더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추천한다.

어지러웠던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민박 사장님이 저녁으로 김치찌개를 준비해 주셨다. 칼칼한 국물에 피로가 싹 가셨다. 오전에 당했던 소매치기를 이제는 웃어넘기는 어머니의 태도가 참 멋있었다. 물론 그 때문에 피곤해졌던 것은 사실이나,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밝은 표정을 유지하려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기분이 안 좋아지면 표정으로 여실히 드러나는 나로서는 본받아야 할 점이다.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 잡고 남은 사흘 동안 긴장해서 여행을 잘 마무리하리라 다짐했다.

빅토르 위고의 침실(추정) | 저녁으로 내가 좋아하는 연근조림과 탕수육이 나왔다


셋째 날

루브르 박물관 - 에투알 개선문 - 에펠탑

아침을 먹고 바로 루브르 박물관으로 갔다. 루이 14세 기마상 앞에서 가이드를 만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보안 검사를 받은 뒤 당당하게 독일 거주증을 내밀며 무료로 입장했다. 바티칸 미술관에서는 기독교 성인들에 대해 배웠다면, 루브르 박물관에서는 그리스로마 신화 신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9년 전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함부르크에서 박사를 하고 있던 대학원생이 이끄는 투어로 함부르크, 파리, 런던에 각 5일씩 왔던 적이 있었다. 또래 친구들이랑 놀면서 가이드를 따라다니기만 하다 보니, 남아있는 기억이 많지 않다.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는 내 머릿속에 남아있던 장면이 딱 하나 있다. 모나리자가 전시된 방에 들어간 순간 희미했던 기억이 다시 재생되었다. 모나리자가 뭔지도 모르지만 많이 들어봤고 유명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까치발을 들고 모나리자만 한참 쳐다본 기억. 대단한 의미가 있는 기억이 아니지만, 어릴 적 생각이 나서 괜히 아련해졌다. 모나리자라는 기묘한 작품을 감상했다기보다는 당시의 기억을 되짚을 수 있었던 점이 좋았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나를 쳐다보는 모나리자 | 외부도 참 아름다운 루브르 박물관

길었던 루브르 박물관 투어가 끝나고—궁금해서 따로 함무라비 법전을 관람한 뒤에—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프랑스 요리가 비싸고 우리 입맛에 안 맞는다는 것을 전날 파악했기 때문에 고민 없이 이탈리아 음식점으로 갔다. 점심을 먹으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원래 미술관들을 둘러볼 예정이었지만, 하늘이 아주 맑아 개선문에 들렀다 에펠탑을 또 보기로 했다. 샹들리제 거리는 예쁘다기보다는 깔끔했다. 우리 숙소가 있는 빌레쥬프랑 너무나도 대조적이어서 더 그렇게 느낀 듯하다. 명품백 모양의 루이뷔통 건물을 지나, 나선형 계단을 따라 개선문 꼭대기로 올라갔다. 12갈래로 갈라진 샤를 드 골 광장 위에서 보니, 실망스러웠던 파리가 아름답게 보였다. 파리는 도시 자체가 워낙 커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개선문과 혼잡한 회전교차로 | 저 멀리 감성이 사라진 도시의 모습도 보인다

또다시 크루아상을 먹은 뒤 에펠탑으로 갔다. 그새 구름이 드리워 11월만큼 맑은 하늘의 에펠탑을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구름 색깔이 하얀 것에 만족했다. 17시가 넘어가니 쌀쌀해졌다. 조명이 켜진 에펠탑을 보기 위해 1시간이나 바깥에서 기다리기는 힘들어 바로 옆 건축 박물관으로 대피했다—입장료가 무료임에도 전시관은 제법 알차 보였다. 축구를 보다가 18시에 다시 밖으로 나와 조명이 켜진 에펠탑을 감상했다. 까만 밤하늘에 조명이 켜진 에펠탑을 보니 야경은 참 평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이 흐리든 말든 결국 시커먼 밤은 항상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시간대의 에펠탑

이후 Chez Papa Jazz Club이라는 재즈바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예약은 못했지만 문을 여는 19시 30분보다 일찍 가니 2층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니 금세 만석이 되었다. 블로그에서 찾은 곳이어서 그런지 한국인들이 곳곳에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니 분위기는 무척 좋았다. 재즈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나도 모르게 리듬을 타며 음식을 먹고 와인을 마셨다. 하지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따져볼 때 음식의 맛과 양은 낙제점이었다. 게다가 공연비라는 명목으로 따로 30유로를 청구받았는데, 심지어 음식값에도 공연비가 포함된 듯해서 다소 돈을 뜯기는 기분이었다. 연인이랑 가는 것이 아니면 썩 추천하지는 않는다.


넷째 날

베르사유 궁전 - 오르세 미술관 - 오랑주리 미술관 - 콩코르드 광장 - Shakespeare and Company

1시간 넘게 지하철과 RER을 타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갔다. 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걸으니 거대한 궁전이 떡하니 서있었다. 울타리와 외벽 여기저기에 금장식이 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장을 보태 이 궁전에서만큼은, 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었다—분명 셰익스피어도 동의할 것이다. 얼마나 돈이 넘치고 사치스러웠으면 귀한 금을 저렇게 덕지덕지 붙일 수 있었는지. 이렇게 많은 금을 쓴 것도 그렇지만 어떻게 반짝이도록 매일 관리하는지도 궁금했다. 궁전 내부도 역시 화려했다. 금이 가득한 것은 물론이고, 자부심 넘치는 인물화들과 섬세한 가구들까지 궁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모두 담고 있었다. 이 궁전 앞에서 뮌헨의 님펜부르크 궁전은 명함도 못 내미는 그저 별장에 불과했다.

어디를 둘러봐도 반짝거리는 황금 장식이 보인다 | 다른 궁전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치스러운 궁전 내부

다시 파리 시내로 돌아와서 미술관들을 둘러봤다. 오르세 미술관 주변에서 바게트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들어갔다. 전날부터 사용한 파리 뮤지엄 패스 2일권—독일 거주증이 있는 나는 패스를 사지 않았다—을 보여주기 위해 줄을 섰을 때, 불현듯 어릴 적 이곳에서 줄을 서며 친구들과 떠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내부로 들어가니 0층에 늘어서 있는 조각상들, 거대한 시계, 지나가며 흘겨봤던 구내식당까지 기억들이 속속 떠올랐다. 하지만 루브르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작품의 구체적인 정보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이날 또한 그림 대신 미술관의 분위기만 감상한 뒤,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갔다. 내 키의 대여섯 배는 되어 보이는 기다란 그림들만 훑어본 뒤, 기념품점에서 이 그림이 그려진 책갈피만 사고 나왔다.

돌아가는 길에 Shakespeare & Company에 잠깐 들렀다. 내 최애 영화 '비포 선셋'에 나온 곳이었는데, 내부가 워낙 혼잡해서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었다. 이후 아직도 복원 공사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지나 숙소로 갔다. 이날 저녁은 무려 삼겹살이었다! 민박 사장님이 냉동 삼겹살을 직접 구워 주었다. 우리는 소주 대신 와인을 사 온 뒤, '이건 소주다' 쇠뇌하며 마셨다. 오래간만에 먹는 고기에만 정신이 팔려 이 밤이 유럽 여행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머니와 동생에게도 물론이고, 나도 이후에는 기숙사 밖에서 자는 여행을 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을 싸면서 드는 기분은 조금 이상했다. 반년 동안 유럽 방방곡곡을 다니며 짐을 싸고 풀고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그 번거로움의 마침표를 찍으며 가방들에게 딱 한 번만 더 고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림이 정말 길어 사진 하나에 담기 힘들다 | 독립 서점 따위에 출입 통제 요원까지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다섯째 날

몽마르트르 - 안젤리나

마지막날까지 민박 사장님이 차려준 든든한 아침을 먹고 몽마르트르로 갔다. 언덕이라고 하기에도 꽤나 높았다. Abbesses 지하철 역에서 내린 후 지상으로 올라오기까지 계단을 백 단은 족히 넘게 오른 것 같다. 숨을 가쁘게 쉬며 사랑해 벽에서 '사랑해'를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푸니쿨라 역이 있었다. 덕분에 힘들이지 않고 언덕의 정상인 사크레쾨르 성당에 갈 수 있었다. 언덕 위에서 파리 전경을 한 번 감상한 뒤 성당에 들어갔다. 분명 9년 전에도 왔었던 곳인데, 완전히 낯선 느낌이었다. 겉은 하얀데 내부는 살짝 푸른빛이 도는 게 모스크 느낌도 들었다. 성당에서 나와 천천히 내려왔다. 지그재그로 내려오며 그 유명한 팔찌단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계단을 오르다 팔찌단이 말을 걸길래 거기에 응하려던 순간, 가이드 선생님이 얼른 저지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9년이 지났고 나름 유럽에 몇 달 살아봤던 사람으로서, 우리 가족에게 접근하는 팔찌단을 빤히 쳐다보고 웃어 보이며 당당히 우리 길을 걸어갔다. 근처 기념품점에서 동생이 자석을 사는 것을 지켜본 후, 근처 Four Saisons라는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이후 시내로 돌아가 Angelina라는 카페에서 선물용으로 밤잼 튜브를 여러 개 산 뒤, 짐을 찾으러 숙소로 돌아왔다.

곳곳에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관광객을 기다리는 팔찌단이 보인다 | 제법 가파른 몽마르트르 언덕

맡겨두었던 짐을 찾고 인심 좋은 사장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어머니와 동생을 배웅하기 위해 같이 샤를 드골 공항까지 갔다. 짐을 같이 부치고 수속하기 전까지 같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항공편 전광판을 봤는데, 1시간 뒤에 이륙하는 뮌헨행 비행기를 발견했다. 저 비행기에 타고 싶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바로 당일에 뮌헨에 도착하여 기숙사에서 발 뻗고 편히 자는 과정을 상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가 없었다. 표값이 비싼 것도 있지만 애초에 이륙까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아서 더 이상 표를 팔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만약 표를 팔았다면 충동적으로 살 수도 있었기에 어쩌면 다행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씁쓸하게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고 석 달만에 Bercy 역으로 갔다. 으슬으슬한 밤에 덩그러니 남겨져서 그런가, 11월에 파리 마스터스 결승을 봤었던 Accor Arena가 무척 반가웠다. 이날 탄 야간버스도 역시 마지막이었다. 비행기를 타는 상상이 계속 머릿속에서 아른거렸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버텼다. 후련함 덕분인지 잠도 잘 왔다. 이렇게 길었던 열흘 간의 가족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가족 여행이다 보니 솔직히 깐깐하게 소비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특히 먹을 것에 있어서 맛있는 음식을 큰 망설임 없이 주문할 수 있었다. 다만 이전 여행들과 다르게 부담감이 있었다. 내가 일정을 다 짜고 예약을 다 했기 때문에,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나 매일 걱정되었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잘 진행되었지만, 그 때문에 긴장이 풀어져 결국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아서 무척 아쉬웠다. 또한 사소하게는, 혼자 여행할 때보다 걸음 수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와 여동생의 체력에 맞추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뮌헨으로 돌아가서는 공부를 시작해야 했다. 독일에는 중간고사가 없기 때문에 오로지 기말고사만이 성적에 영향을 준다. 개강 이래 공부한 적이 정말 손에 꼽기 때문에 시험 전 며칠 동안 바짝 공부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실 기말고사는 문제가 아니다. F를 맞는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학교에서 딱히 뭐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이제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점이 무서웠다. 당장 3월 초에 있는 고시 1차 시험을 준비해야 했다. 물론 자신감은 충분했지만, 혹여나 떨어지면 1년이 날아가기 때문에 절대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었다. 기숙사에 도착하니 비로소 좋은 시절 다 끝났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놀았던 만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고시에 합격해서 다음 가족 여행 때—호주와 뉴질랜드에 가는 것으로 큰 그림을 그려놓았다—이번에 부족했던 점들을 보완할 기회를 쟁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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