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가 가져다주는 상상력

143. 꽃부리의 이야기 <2020년 3월 12일>

by 임선영

어쩌면 이것은 직접적인 것보다 더 맛깔스럽고 조용한 멋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사물을 표현하고 그것을 묘사하는 것 차이는

겉으로 보이는 차이가 크면 긴장도가 크다고 한다.

직유를 통해 무엇처럼, 보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긴장도가

생각하며 그리는 추상적인 레벨이 놓아질수록 은유적 프로세스가 많이 개입이 된다.

고등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긴장도 높은 은유를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라 할 수가 있다고 본다.

피아노를 아주 깊게 치는 피아니스트들은 마음만 먹으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

푸는 능력과 같은 한계까지 갈 수가 있다고 본다.

바둑도 그렇고 특히 그림의 세계는 은유적 능력이 너무도 많이 감지되는

세계라 할 수가 있다.

과학도, 컴퓨터, 추상화 이러한 알고리즘의 패턴은 모두 은유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은유적인 패턴의 반복의 과정이 핵심을 이룬다고 할 것이다.

모든 과학자들의 발명과 발견은 모두 은유적인 착상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느끼고 있다.

우리 어린 시절 말로만 듣던 이러이러한 상상력으로 여겼던 말들이 모두 현실이

되어 요즘 사회의 공간을 속도 빠르게 운영해 가고 있지 않던가?

반면 그 은유적 상상력들이 만들어 낸 현실이 요즈음 우리들의 정서를

좀 먹고 있기는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나는 은유적인 사고로 사색해 걸어가고 있는 길을 나 혼자만이라도

제대로 이해하고 걸어갈 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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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온 은유적인 영감을 현실로 해결하는 알고리즘을 배우는 것은 현실이며

직접적이나 그러나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은유적 사고 능력은

고통스러운 기초 확립의 시간과

시행착오를 얼마나 참고 견디느냐에 따라서 나온다.

또 자신의 전공 서열과 다른 영역의 은유는 많은 전공과 다른 독서를 통해

은유의 상상력을 키우는 토양이 된다고 느낀다.

나 자신이 목말랐던 부분들을 많은 독서를 통해서 간접 경험을 한

토대들이 글을 통해 자신을 들어낼 수 있는 힘을 길렀기 때문일 것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표현보다 은유적인 표현으로 상대방을 풍부하게 설득하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들은 말과 글로 그림으로

또는 현실의 과학 발전으로 세상을 가지고 놀지 않던가?

우리가 어느 현장에서든 목 잡히는 과정이 있기 마련인데 그 복잡한

알고리즘 과정을 감당하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들이다.

모든 역사에서 학문의 고하를 막론하고 그 사람의 말씨와 행동을 보며

참 배우지 못한 사람 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다.

훌륭한 스승과 훌륭한 벗과 좋은 책은 인간의 3가지 보배다 하고

안병욱 교수는 말한다.

지혜로 제자를 가리키는 스승을 만나지 못하고 물질에 빠져

어울리다 좋은 벗을 알아보지 못하고 모든 학문에 기초인 독서를

도통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 많아져서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므로

물질의 수렁에 퐁 빠진 사람 천지인 사회.....

은유적 상상력이 없는 건조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특히 요즘처럼 시끄러운 정치판에서 정치인들이 은유적 예민함을

갖고 있었다면 정치는 훨씬 품격 있고

상상을 초월하는 멋진 정치판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 사회도 모든 것들은 성적 위주 물질 위주의 사회가 되어

은유가 떡판에 내려 쳐지는 시대가 되었으니 슬프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일들이 직접적으로 도전하고, 내뱉고 막된 판처럼 돌아가는

이 사회의 판 속에서

옛 선인들의 지식과 지혜가 곁들여진 삶의 자락은 자연과 벗하고

독서와 가까이하며

은유적 소양을 키웠던 물질 위주가 아니여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가 좀 더 부드러워지고 그 선진들이 은유를 통해 만들어 놓은

과학적인 알고리즘들이

훌륭하게 쓰이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갑자기 가슴 답답 해짐은 무슨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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