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3. 꽃부리의 이야기 < 2025년 10월 10일>
성묘(省:살필 성, 墓:무덤묘)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조상의 무덤을 찾아뵙고 돌보는 것을 말하죠
단순히 방문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묘지를 정비하고 벌초를 하며
후손들이 조상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중요한 의식이죠
성묘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전통이 아니라
조상을 기억하고 후손 간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의미 있는 행사이기도 하지만
조상을 기리며,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점점 흐려져가는 가족 관계의 유대감은 성묘를 통해 가늘게나마 이어져 옴을
우리 세대는 느낀다.
우리 다음 세대부터는 본인의 가족 위주의 계획하는 패턴으로 바뀌 여가는 추세이니
시대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는 요 사히 가족의 흐름이다.
옛것을 따르라 이를 수 없는 우리 세대들은 몸에 물든 옛 습관을 따르는 아마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는 슬픔과 마지막 성묘가 될지 몰라 뜻깊은 길이기도 하다.
추석 성묘는 가야국 수로왕 때부터 생겼다 하며
성묘의 기원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이규경이 남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가야국 수로왕 시대부터
1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15일(추석)에 제사를 지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보면 이미 삼국시대부터 추석에 성묘하는 전통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4대 명절과 성묘 문화 우리 조상들은 성묘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4대 명절(설날, 한식, 단오, 추석)마다 조상의 묘를 찾았다고 하죠
특히, 한식과 추석에는 꼭 성묘를 했다고 합니다.
이때 머슴이나 거지라도 돌아가신 부모의 무덤을 돌볼 정도로 성묘를 중요하게 여겼고
주인은 심지어 성묘 가는 머슴에게 새 옷, 신발, 허리띠를 챙겨줬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63회 성묘 간 정조(正祖) 조선은 유교를 근본 이념으로 삼았던
사회였던 만큼, 왕 역시 성묘를 통해 효를 실천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조선의 왕들은 정기적으로 조상의 능을 참배하는 능행(陵幸)을 거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백성과 직접 소통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습니다.
각 가정에서도 지금까지는 그러한 의미가 짙게 깔려 있음을 오늘 절실하게 느낀다.
성묘는 왜 해야 할까?
세월이 많이 지났음에도 현대 사회에서 성묘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상을 기억하고 기리는 시간이고, 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의 묘를 돌보며
그 의미를 되새김하며,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세대 간 유대감을 형성하는 기회일 것이다..
묘지를 정리하고 관리하는 의미는 후손으로서 조상의 묘를 책임지고 돌본다는 정신적
가치와, 벌초를 통해 무덤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는 의미가 있고 가족 간의 단합 화합하는 시간이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척 친지와 보내는 시간이고 자연 속에서 가족 간의 유대감을 돈독히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본다
즉, 성묘는 단순한 의례를 넘어서 가족과 조상을 이어주는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
고인과의 대화 마음속으로 인사 나누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도 하고, 부탁도 하고
왠지 잘 다독거리며 들어주실 것 같은 따뜻함을 조상 묘들을 이리저리 돌며 절을 올리며
부탁을 하면 왠지 다 들어주실 것 같은 느낌은 유별난 나만 느끼는 감성인가?
한 때의 부귀와 영화가 꿈 같이 지나간 자리에 무덤으로 남아서
정신들을 잘 차리고 살다 가라는 말씀들을 하는 듯 말없이 둥그런 반쪽의 모습으로
추석 명절의 절을 받는 선조들의 자리.....
이제 망팔의 기로에 들어선 후손은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우리 세대 다음은 누가 이 먼 고도까지 찾으러 다닐 것인지....
변한 세태 속에 삶을 살아가느라 정신 못 차릴 후손들의 모습들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참 살기 어려워지는 후손들 삶도 이해하시고 잘 보살펴 주시라
마지막 인사가 될지 몰라 여기저기 선조들의 묘를 찾아 절을 올린다.
후손들 성묘와 주워 먹으라고 심었는지 무성히 자라 여기저기 뚝뚝 떨어트린 알밤
주워 모으며 이 자리 저 자리 끝자리 모두 다 지나가는 세월 붙잡을 수 없어 허허 로히 눈은 하늘에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