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2. 꽃부리의 이야기 <2026년 4월 10일 >
어느새 꽃비는 내리고 / 임 선영
봄이 활짝 피어나기 전 나는 조금씩 꽃망울을 열듯 말 듯 잔기침하는
꽃나무들을 들여다보며 척박한 땅기운에서 행복한 웃음과 여유를 찾는
꽃나무들과 같이 덩달아 봄 앓이를 하고 싶었었지.
봄날의 바람과 마주한 자리에서
신과 마주 선 무상무념의 자리에서도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새싹들과 교감을 하며
나도 조용히 새롭게 깨어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러나 어느 사이 그 좋아하던 봄비 소리 끝에 마음 달래던 봄 꽃들은 다 떨어져
땅 위를 뒹굴고 푸른 잎 뾰족이 "이제 나가도 될까" 하며 봉곳이
연둣빛 내밀고 있는 거리 봄바람이 차다.
봄이 오면 햇볕이 잘 드는 어느 자리에 꽃 화분 하나를 들여 다 놓고 들여다보며
향기로운 나를 만들기 위해 매만져 주고 싶고 겨울 내내 움츠러든 마음과 몸의
거치러 진 틈을 다듬고 싶고 흙냄새 가득한 고운 마음으로 꽃 씨를 뿌리고 싶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우리 인생처럼 한나절의 봄비를 이기지 못하고 어느 사이
떨어져 버린 여린 꽃잎을 밟으며 왠지 나이 들어 어딘지 모르게 짓밟힐 것 같은
서정의 한 구탱이를 보는 듯 그냥 서럽다.
봄기운에 나는
거친 마음씨 땅에 고운 씨를 뿌리고 싶어
꾹꾹 참아 낼 일들이 얼마나 많겠어
그러나 고운 엄마가 되어야 하겠지
그래야 곱게 늙어 갈 거야
꼭 품어 줄줄 알아야 할 거야
엄마는 품어 안는 기묘한 재주가 있잖아
누군가에게 즐겁고 포근한 추억이 되는
풍경을 만들기 위해서...
봄기운에 그래도 이 나이에 어리석게도 꽃비를 맞고 싶다
어릴 적 우산도 없이 고향 봄 길을 무작정 걸어서 젖은 옷에 감기 들어
회초리로 맞던 그 기억처럼 호되게 야단맞아 훌쩍훌쩍 울면서도
봄기운을 느끼고 싶던 시절이 생각난다.
지나던 들 길에 풀꽃들도 우산 없이 촉촉이 봄비 맞으며 하늘하늘 속삭이던
모습으로 누군가와 꽃비 같은 이야기 속삭이며 지금도 걷고 싶다.
꽃과 나무에 얼굴을 씻어주어 생기를 불어넣어주던 꽃비
꼭 어린아이의 미소처럼 자연의 모두에게 설렘을 주며 내리던 꽃비
시선이 닿는 자리가 반짝거리며 촉촉이 젖는 설레는 꽃비 내리는 풍경 앞에서
발길이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이던가.
그러나 가슴을 달래던 저 떨어진 꽃잎은 어찌할꼬, 지는 인생처럼 떨어진 모습은.....
그 어느 날 벤치에서 잊어버린 봄기운
기억대신 살아 있는 시간을 주세요
또 어디로 가야 하는 건가요
세월의 규모는 자꾸 줄어들고
역사 속 여인의 혼절
하늘마음 쏟아지는 소리
꽃비가 곡선으로 주위를 감싸 안으면
적당한 속도로 주는 느긋함
봄 오고 가는 표정 설레는 마음 어찌할까요.
봄기운에 나는 풀향기 가득한 잔디밭에 누워 어린 시절 부르던 동요를
부르며 흰구름과 나비를 바라보며 꿈꾸는 아이가 되고 싶다.
봄나물 캐며 콧노래 흥얼거리던 동무들 이름을 불러 보고도 싶고
고무줄놀이, 색차기, 땅따먹기 하며 콧물 훌쩍거리고 빨아먹던 단발머리
친구들이 보고 싶다.
꽃샘바람에 쩍쩍 갈라진 손등 사이로 흐르는 피를 닦아주던
소년 친구도 보고 싶다.
봄기운에 꽃비가 오기 시작하면 우표에 침을 발라 꼼꼼히 붙여서
아빠에게 봄 쎄타 사 달라고 서울로 보내던 편지를 또 쓰고 싶다.
꿈 꾸며 방황하던 젊은 시절, 위로가 되어주던 꽃비의 설레는
풍경 앞에 아직도 세월 지나간 자리에서
아름다운 자연 그림 앞에 마알간 얼굴로
꽃비를 맞으며 나이를 잊고 옛날로 슬픈 여행을 하고 싶다
이 마음 어쩌나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