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란 모습 [즐거운 어른]

격하게 맞이하고 싶은 나의 미래

by 자이언트마마

이옥선 작가는 1948년생으로 현재 만 76세고, 연 나이 77세이다. 작년인 2024년에 이 책을 출간했으니 그녀의 나이 만 75세에 쓴 글이다. 나의 주변에 최고령자는 1929년생으로 살아계신 할머니 외, 1950년생 시아버지와 1952년생인 시어머니가 계시고, 나의 아버지는 1954년생, 어머니는 1958년생이니 오늘 읽은 책의 저자인 이옥선 작가는 나의 부모 세대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다. 하지만 내가 아는 70대와는 다르게 그녀는 (내가 본 기준에서) 지혜롭게 열려있다.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는 목적은 우선은 자신의 식견과 안목을 높이는 데 있고, 궁극적으로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쿨해지는 데 있다. '쿨해진다'는 건 냉정해진다기보다는 냉철해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세상을 등지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는 걸 뜻한다. - [독서의 위안(송호성, 화인북스) 중에서]


작가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이 문장을 읽고 위안 삼았다고 했다. 그렇다. 폭넓은 식견을 가지고 세대 간의 들 수 있는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한 타인의 생각을 꾸준히 듣고, 읽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녀는 아마도 꾸준한 독서를 통해 그런 책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교사로 3년간 재직하다가 같은 교사였던 남편을 만난 후 그녀는 전업주부로 살았다. 늘 책을 읽었기에 말년에 구력이 발동한 것일까? 꾸준히 책을 읽고 식견과 안목을 높이며 세상에 쿨해지는 방법을 오랜 시간 터득하다 숙제(남편을 내조하고 아이들을 독립시키는)를 마치고는 마침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며 글을 쓰고 훨훨 날아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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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내는 집안의 며느리로 평생을 살다가 남편을 보내고, 집안의 제사에 대한 주도권이 생겼을 때 그녀는 과감하게 시아버님과 남편의 제사를 포기했다. 딸이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한다. 아들 내외가 명절에 오지 못한다고 해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나만의 시간을 누구보다 알차게 쓰려고 노력하는 이옥선 작가는 정말이지 멋진 어른이다.


그러니 새로운 판을 짜야 옳다. 한국의 여자들은 너무 똑똑하고 교육도 다 잘 받았다. 사태 파악이 빨라 비혼자도 늘었다.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단다.) 더러 남자들도 비혼을 선호하고 결혼하고도 아이 없이 사는 풍조도 늘어간다. 출생률이 세계에서 제일 낮다는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지구의 부담을 줄여주는 일이니까. -p.26


사람들이 할머니가 되면 할 일이 없어 주리를 틀어댈 거라고 자기들 멋대로 생각한다. 그러니까 자식들은 지 자식을 갖다 맡기고도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고 (오히려 소일거리를 줘서 다행이지? 하는 태도다.) 손주는 봐주는 게 당연하다고 저희 편할 대로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요즘 할머니들은 다 자기 나름대로 루틴이 있고, 나이 들어도 새로 배우고 싶은 것은 얼마든지 있다. -p.31


이렇게 당찬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라고 불안한 시기가 없었을까? 68학번인 그녀는 자식 6명을 다 대학에 보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교사로 직업 활동을 했었다. 그 당시에 여자들은 대부분 시집보내기 위해서 길러졌던 시절에 그녀는 대부분이 보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살았다. 그러니 결혼 후 전업주부로 살면서 불편하고 불안한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04학번이고 최근 40대가 된 내가 불안함을 한참 겪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 문장이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


젊었을 때는 지지부진한 일상을 유지하면서 인생에서 중대한 뭔가를 빠뜨렸거나 어딘가에 더 중요한 인생의 알갱이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으로 갈등한 시기도 있었다. 하나 중대한 것은 바로 그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p.35


정말이다. 인생의 알갱이를 찾다가 나 자신을 잃는 경우가 많은 데 사실은 무탈한 것이 가장 좋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아무 일 없이 무탈하게 하루하루 가족이 평범한 하루를 살도록 서포트했다는 자부심으로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살았음을 감사히 여기게 되었다. 내 또래들 경우에는 맞벌이를 하고 경제력을 갖추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원더우먼 정도는 돼야 대접받는 시대라 개인적인 수입이 없을 때는 (그래도 프리랜서로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이어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터였는데) 굉장히 자신감이 없어지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었는데 그 조차도 이옥선 선배님의 말씀에 위안을 얻게 됐다. 현재 나의 희생과 돌봄으로 가족 모두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내가 아끼고 안 써서) 부족함이 없으면 그것으로도 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최근 지인 중에 직업적 커리어로 비슷한 고민을 하다가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는 작가로서 인정받고, 그 일에 열중하다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건강이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가게 된 분이 있었다. 40대 초반밖에 안 되는 그녀가 그런 상황을 겪게 된 것에 나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무탈한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것이다.


엄마가 되기 전 나는 거침없고 씩씩하고 사회정의를 부르짖는, 또한 남녀 불평등의 산 증거인 남편을 쳐부술 수 있는 용감한 전사였다. 그러나 엄마가 되고 나니 사회정의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한없이 비겁해져서 남편의 부당한 처신도 감싸 안고 내 바운더리를 지켜내야 한다는 생각만 강해져 갔다. 대부분의 엄마가 그렇다. -p.111


나는 절대 엄마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내 또래 중에서는 누구보다 빨리 엄마가 되어 아이러니하지만) 결국 엄마가 되고 보니 자식을 더 많이 갖고 싶어 지기 했다. 보통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잘 들여다보면 자식이 부모를 키운다는 것을 최근에 많이 느낀다. 잃을 것이 많아질수록 비겁해지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나의 것도 다 내다 버릴 수 있게 되는 건 부모가 될 때부터이다.


한 죽음에 따른 수많은 일들이 있고, 그것을 부부 중 남은 쪽이 감당해야 한다. 이러니 결혼 생활에 해피엔딩은 있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

결혼 생활에는 해피엔딩이 없지만, 인생의 끝이라고 해서 그것이 불행한 것만은 아니다. 노쇠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이 변하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이 왔을 때 인생의 끝 지점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축복이다. -p.124


나의 남편이 죽을 뻔한 고비를 넘은 적이 몇 번 있다. 한 번은 결혼과 동시에 임신하고 연이어 연년생을 낳는 바람에 신혼 2년 차에 둘째를 품었는데 그 해 겨울, 눈길을 뚫고 운전을 하던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다. 차는 폐차를 할 정도의 사고였지만 다행히도 남편은 무사히 가족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몇 년 뒤 남편은 직업상 야근과 당직이 많았기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동료들과 함께 했던 술자리를 자주 가졌는데, 어느 날 갑자기 술자리에서 쓰러졌고, 잠시 심정지가 되었으나 응급처치를 잘했던 동료들 덕분에 살아났다. 그리고 몇 년 뒤 승진에 관련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시절 호르몬도 불균형해져서 남편은 공황장애 증상을 겪었고 그 당시 몸이 쇠약해져서 몸의 일부가 부러지는 등 여러 차례 수술을 했었다.


지금 현재 40대 중반을 넘어가고 있는 나의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지만 결국에는 나이가 들고 언젠가는 병들고 죽게 될 것이다. 평소 건강 상태를 보아도 월등히 내가 건강하기에 몇십 년이 지난 어느 날에는 내가 남편의 죽음을 먼저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 적이 많다. (물론 인생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 생활에는 결국 해피엔딩이란 없다는 저자의 말이 조금은 이해되었다. 하지만 결국 간절한 것은 나의 인생 아닌가.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주적 사고를 하면서, 좁은 나라 안에 갇혀 사는 우리하고는 영 다른 사고를 펼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젊은이들의 여러 삶의 형태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형편이 못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싶다. 그러니 나는 이제 반성하고 다른 세대의 형태나 사고방식 그 외 다른 것들에 대해서 다시는 간섭할 마음을 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p.202


젊은 세대에게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70대 중반의 어른을 만나서 굉장히 반가웠다. 대부분 알고 있는 70대는 사실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나의 주변에는 50대부터 60대의 친구나 지인들이 굉장히 많은 편이고 나의 또래는 상대적으로 적은데,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자면 겉늙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어느 그룹에 가든 막내로 보이고 싶어서가 아닐까도 싶다. (사실 또래와는 어릴 때부터 잘 어울리지 못하긴 했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배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더 인생을 살아본 선배에게 조금이라도 배울 구석이 있거나 혹은 반대로 나이가 들어서까지 저러진 말아야지 하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좌우간 나도 맞이하고 싶다. 76세 작가 이옥선 같은 즐거운 어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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