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르네상스 들여다보기 04-03 그럼에도 쌓여가던 富

by 할리데이

르네상스가 촉발된 또 하나의 시대적 배경으로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의 부의 축적을 들 수 있다.

예술의 발전은 발전의 주체가 되는 그 사회의 부(富)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다.

사회적 부가 축적되었을 때 예술에 대한 소비 욕구 즉 수요가 발생할 것이고, 그에 상응한 예술의 공급 체계가 활발히 가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활발히 가동되는 예술 공급 체계란, 두말할 나위 없이 재능 있는 사람들이 직업으로서의 예술가의 길을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게끔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말한다. 그리고 한 세대가 이루어 놓은 예술적 성취가 다음 세대에 손실 없이 전승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이던 18세기경에 활발히 전개되었던 여항(閭巷)문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영조와 정조 치세 당시, 경제와 기술 분야의 여러 가지 개혁정책들은 생산력의 향상을 불러왔고

이것은 부의 축적을 가져왔다.

그리고 축적된 부의 일부가 예술의 수요를 불러왔고, 수요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공급을 촉진시키며 예술의 발전을 불러왔다.

영․정조 시대에 활발히 전개되었던 예술의 트렌드와 경향을 여항문화라 일컫는데,

김홍도가 바로 그 시대의 인물이다. 판소리 또한 여항문화가 한창이던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우리나라의 여항문화보다 훨씬 앞선 시기에, 서양의 르네상스는 바로 그 길을 걸어갔다.

당시 페스트로 인해 인구가 급감한 유럽사회는

부족해진 노동력을 대체하기 위해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마구(馬具)와 수레가 혁신적으로 개량되었고,

이에 동반하여 곳곳에 다리와 도로가 건설되었다.

해상교통 수단으로 사용되던 배 또한 노를 저어 항해하던 방식에서 돛을 이용하는 방식이 대세로 자리 잡아갔다.

해상운송 분야에서 혁명적 사건이라 할 삼각돛 사용기술의 발달과 범용화는 더 먼 거리를, 더 빨리, 더 많은 짐을 싣고 갈 수 있게끔 해주었다.

이러한 육상과 해상에서의 수송능력 향상은 유럽의 대내외 무역을 활성화시켰고 이는 결국 부의 축적으로 연결되었다.

앞선 글에서 유럽인들의 피폐해진 삶을 이야기했지만, 이런 와중에도 유럽의 일부 지역과 일부 계층의 사람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쥐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이탈리아의 도시들과,

유럽 중서부의 플랑드르 지방(플란더스 지방)의 도시들은 동방세계와 유럽 사이의 중개무역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고,

그 과정에 유럽 전역의 군주들과 교회들 또한 부를 쌓아 갔다.

그렇게 쌓인 부는 예술과 과학의 소비에 사용되었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 과학자들은 예외 없이 당시의 부의 소유자들에게 직접 고용되거나, 후원을 받아 자신들의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리스․로마의 유적에서나 보아오던 장엄하면서도 매혹적인 건축물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 건축물들은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조각품들로 장식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그림이 공간을 장식하는가 하면,

새로운 선율의 음악이 사방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문학은 인간의 고뇌를 노래했고, 과학은 대담하게도 지상의 이치를 천상의 섭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도시와 일부 계층에서 생성된 부는 당사자들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오늘날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일컫는 문예 부흥을 자연스럽게 유발시켰던 것이다.


<르네상스 들여다보기 04-04로 이어집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르네상스 들여다보기 04-02 황폐해진 유럽인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