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 달 이야기 > 프롤로그 / 지구의 동반자 달
1968년 7월 19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로 향하던 인류는 마침내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600만여 년 전, ‘밀리니엄맨’ 할아버지가* 아프리카 초원의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 첫발을 디딘 이래 가장 역사적인 발걸음이었다. 그 옛날 두려움에 떨면서도 땅에 첫발을 디디던 인류―밀레니엄맨―의 위대한 도전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천상(天上)에 있는 달의 땅에까지 발을 디딜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인류의 이러한 도전정신은 신화와 전설 속 이야기를 현실의 이야기로 만들어 버리는 한편, 천상에 머물고 있던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속세로 끌어내리고 말았다.
[*직립보행을 시작한 최초의 인류인 오로닌 투게넨시스 화석의 별칭이다. 제4부 <인류>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지금은 제1부 <우주>이다.)]
[** Artemis, 그리스 신화 속 달의 여신. 태양의 신인 아폴론의 누나이다.]
어릴 적 내게 낮과 밤은 서로 다른 세계였다. 낮이, 해님이 주관하는 밝고 환한 세계였다면 달님이 주관하는 어둡고 컴컴한 밤은 낮과는 완전히 분리된 세계였다.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지구가 둥글다는 것과 지구의 자전으로 낮과 밤이 구분된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 나에게 해님과 달님이 따로 지배하는 낮과 밤의 세계는 엄연히 다른 세상이었다. 지구가 행성이라는 이름으로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고 있으며 그 지구 둘레를 위성인 달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지만, 나의 낮과 밤의 경계는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초등학교에서 배우고 받아들였다던 태양과 지구와 달의 운행원리를 인류가 터득하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6세기에 이르러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동설이 발표되었고, 뉴튼에 의해 달의 운행원리 등이 겨우 밝혀지게 되었을 뿐이다. 적어도 달의 운행원리에 관한 한, 15세기 이전의 인류의 지식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의 나의 감성과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사실과 다른 과장된 표현이다. 동서양 할 것 없이 인류의 조상들은 이미 기원전부터 1년의 길이, 달의 겉모습 변화와 주기 등에 대해 놀라울 만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근대과학이 태동하기 전의 사람들은 낮과 밤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주관하는 태양과 달을 대칭 또는 대립의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태양을 양의 으뜸(太陽)으로, 달을 음의 으뜸(太陰)으로 칭하며 그것들을 이분(二分)하였고, 유럽의 기독교 또한 성경의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두 큰 광명체를 만드시니,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라는 구절을 통해 낮과 밤 그리고 태양과 달을 대칭, 대립의 구도로 설정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에서도 그러한 이분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옛날 임금님의 집무용 의자인 용상(龍床)의 뒤편으로 둘러친 일월오봉도에서 하얀 달과 빨간 태양을 그림의 좌우에 배치하면서 해와 달을 극명하게 대조시키고 있다. 왜 그랬을까? 옛사람들은 왜 태양을 낮의 주관자로, 달을 밤의 주관자로 인식했을까? 왜 태양과 달을 대칭시켜 가며 그것들을 동격으로 취급했을까?
<인류가 최초로 달에 남긴 발자국> 1968, 버즈 올드린(Buzz Aldrin)
1968년 7월 19일, 인류는 달에 첫발을 디뎠다. 천상의 세계인 달의 땅에 내디딘 인간의 발은, 달에 머물던 여신 아르테미스를 속세로 끌어 내렸다.
옛사람들도 태양이 빛과 낮의 근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아침 해가 뜨면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지면 광명이 사라지며 밤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옛사람들의 정서는 그렇지 않았다. 낮과 밤은 분명 별도로 존재하는 영역이었으며, 각 영역의 주관자이자 수호자로서 해와 달이 있을 뿐이었다. 마침 하늘의 다른 어떤 천체와도 비교 불가의 위상을 가진 해와 달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태양과 달을 동격으로 취급한 이유 또한 간단하다. 태양과 달은 겉보기 크기가 같다. 서로의 엄청난 크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의 크기 비율과 거리 비율이 일치해서 태양과 달은 신기할 정도로 겉보기 크기가 똑같다.* 비록 역할(낮과 밤을 각각 주관)이 다르고 성질(뜨겁고 차가움)은 달랐지만 위상은 동격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세계의 웬만한 문화권에선 해와 달은 오누이였거나 부부였다. 그리스의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태양의 신 아폴론의 누나였고, 우리나라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해님은 달님의 오빠였다. 삼국유사에서는 해님역의 연오랑(延烏郞)과 달님역의 세오녀(細烏女)를 부부로 맺어주고 있다.**
[*태양은 지름이 1,390,000킬로미터이고 달은 3,474킬로미터로 약 400:1의 비율이다. 한편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태양이 1억 5,000만 킬로미터이고 달이 평균 380,000킬로미터인데 이 거리 비율도 약 400:1이다. 그 결과 태양과 달의 겉보기 지름이 거의 일치한다.]
[**삼국유사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 신라의 백성이던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떠나가자 해와 달도 일본으로 따라가 버렸다고 한다.]
달은 우리 인류에게 늘 특별한 존재로 자리를 매김하여 왔다. 날마다 바뀌는 화려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신비감과 황홀감을 가져다주었고, 모양이 변하는 주기의 정확성으로 우리 인간이 달력이란 걸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그 한편으론 우리에게 늘 문학적 감성의 원천이 돼주었다. 애틋한 시와 기묘한 전설의 소재가 돼주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글머리에서도 이야기했듯 우리 인류가 외계로 내디딘 첫 발걸음과 도전을 기꺼이 받아 주기도 했다. 이렇듯 우리에게 감성을 일깨워주고 문명의 길을 열어주었으며(달력 편찬) 무한한 용기를 북돋워 준(달 착륙) 달은, 어떤 면에선 태양을 뛰어넘는 위상을 가진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달은 어릴 적 내게 너무나도 듬직하고 다정한 친구였다. 어디를 가든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어두웠던 밤길을 환히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밤을 지켜주고 밝혀준 우리들의 동무 달이다. 달을 한번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