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 달 이야기 > 달의 초상 ③- ③ 보름달에서 그믐달까지
음력 15일인 보름날이 지나면 만월이던 달도 서서히 이지러지기(기울어지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지러지기 시작한 달은 스무이튿날(22일) 또는 스무사흗날(23일)이 되면 크기가 줄어들어 또다시 반달이 된다. 이때의 반달을 하현달(下弦달)이라 부르는데, 상현달이 태양과 달과 지구가 직각을 이룰 때 나타났던 것처럼 하현달도 세 천체의 배열이 직각을 이룰 때 나타난다. 그런데 두 반달의 공통점은 여기까지만이다. 나머지는 모든 게 서로 정반대다. 상현달과 달리 하현달은 왼쪽이 불룩하다. 지구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태양이 정면에 있고 지구의 오른쪽에 달이 위치하고 있어서다. 그리고 오후 6시에 하늘의 중앙부에서 홀연히 나타나는 상현달과 달리, 하현달은 자정이나 되어서야 동쪽 지평선에서 고개를 내민다. 그렇게 한밤중에 하늘로 떠오른 하현달은 오전 6시가 되면 하늘의 중앙 부근에 이르러 시야에서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그래도 희미하게 하얀색의 잔영은 비친다). 앞서 각주에서 이야기했듯 하현달을 타고서는 돛대를 달고 삿대를 저으며 가더라도 서쪽 나라로 갈 수가 없다. 하늘길의 중간 지점이 하현달의 종점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계속 흘러 날짜가 스무여드렛날(28일)또는 스무아흐렛날(29일)이 되면 해가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서 초승달과 닮은 꼴의 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달의 마지막 얼굴, 그믐달이다. 그믐달은 홀쭉하고 가녀린 모양이 초승달과 비슷하지만 마치 상현달과 하현달이 그러했던 것처럼. 비슷한 이미지의 모습 이외에는 초승달과는 정반대의 위상과 습성을 지니고 있다. 초승달이 오른쪽 아래가 볼록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반해 그믐달은 왼쪽 아래가 볼록하다. 그리고 초승달이 해가 지고 난 직후 서쪽 하늘에서 모습을 나타낼 때, 그믐달은 해가 뜨기 직전 동쪽 하늘에서 잠시 얼굴을 선보일 뿐이다. 초승달이 ‘태양-달-지구’가 나열한 일직선에서 왼쪽으로 24° 정도 비켜 있는데 비해 그믐달은 오른쪽으로 24° 정도 비켜있다. 이 그믐달은 음력 한 달 중 우리가 볼 수 있는 달의 마지막 모습이다. 참고로 ‘그믐’이라는 말은 세 가지 중의적(重意的) 의미가 있다. 첫 번째 의미는, 그믐은 ‘삭’을 의미한다. 달이 뜨지 않는 것 또는 달이 뜨지 않는 날 자체를 그믐이라고 한다. 두 번째 의미의 그믐은, ‘그믐달’을 의미한다. 좀 전에 막 이야기한 그 그믐달이다. 마지막으로 그믐은 ‘그믐날’ 즉 음력 30일을 의미한다. 음력 10일을 열흘(또는 열흘날), 20일을 스무날이라 이름 지은 데 비해, 30일은 ‘서른날’이라 하지 않고 그믐날이라 이름 지었다.
음력 스무아흐렛날(29일), 또는 그믐날(30일)이 되면 달은 다시 모습을 감춘다. 음력 초이튿날(2일)과 같은 원리가 적용되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다만 태양-달-지구의 일직선에서 오른쪽으로 12° 정도가 벗어나 있는 점이 다르다.
이야기 전개 과정에 달의 모든 모습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달의 위상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런데 달의 이런 위상의 변화는 사실 달만의 것이 아니다. 태양계 내의 모든 행성들이 가지는 특성이기도 하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으로 금성의 위상 변화를 발견하고난 뒤 태양중심설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다만 행성의 경우 밝기의 차이를 겨우 감지할 뿐 육안으로는 위상의 변화를 사실상 느낄 수 없다.
<달의 초상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