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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들여다보기 04-01 신에게서 인간에게로

<배경 이미지> 한스 홀바인, 대사들

by 할리데이

14~16세기 무렵 유럽의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한점 있다.

한스 홀바인(Hans Holbein, 1497~1543, 독일)이 그린 <대사들>이라는 그림이다.

그림의 양 측면에는 중후하게 차려입은 신사와 수도복을 입은 기독교 성직자가 서 있고,

중앙에는 테이블이, 배경으로 고급스러운 직물이 놓여있고 둘러쳐져 있는 그림이다.

테이블 위에는 지구본을 비롯한 각종 과학 도구들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인물들과 소품들 하나하나가 당시 유럽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그림 속 두 인물은 유럽 각국의 활발했던 정치 교류상과 정치와 종교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테이블 위의 지구본은 천문학의 발전과 지리학의 성과 그리고 세계를 향한 유럽인의 기개와 야심을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배경으로 그려진 양탄자와 테이블 하단의 회계 장부 등은 동방과의 교류와 무역을 통한 활발했던 경제활동상을 담아내고 있다.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는,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의 모습이다.

홀바인의 <대사들>은 르네상스 시기의 회화로서의 가치와 더불어 당시의 사회상과 시대상을 적확하게 보여주는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뛰어난 그림이다.


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년, 런던 내셔널갤러리

중앙에 놓인 상단의 테이블에는 사분의, 해시계 등이 있고(이는 당시로서는 첨단 천문 관측 장비 등이다.) 하단에는 악기, 지구본, 삼각자, 컴퍼스 등이 그려져 있다. 악기는 류트라는 악기로 한 줄이 끊어져 있는데 이는 잦은 전쟁과 종교개혁으로 인한 사회갈등 등을 상징하고 있다.

그림 속의 두 인물 중 왼쪽은 영국에 파견된 프랑스 ‘대사 장 드 댕트빌’이고 오른쪽은 댕트빌의 친구이자 역시 프랑스에서 파견된 ‘조르주 드 셀브’ 주교이다. 이 또한 당시의 유럽 각국의 활발했던 정치교류상과 정치와 종교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가들은 역사를 시대별로 정의한 후, 그것들을 구분해서 기술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과거 일정 기간의 특징과 그 당시의 시대정신을 유형화해서 정의한 뒤 그것들을 구분하는 것이 역사를 연구하고 정형화하는데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역사를 선사(先史) 시대와 역사(歷史) 시대로 대별하는 것에서부터, 고대-중세-근대-현대 사회로 구분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중세시대를 근대사회로 전환시킨 촉매기로서 르네상스 시기를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르네상스가 유럽사, 나아가 인류사에서 가지는 함의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란 14세기경부터 16세기경까지 유럽에서 일어난 문예부흥 운동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인본적 사상과 문화를 되살리려 했던 일련의 시대정신 내지 경향을 의미한다.

르네상스(Renaissance)라는 말은 재탄생, 재생, 부흥을 뜻하는 프랑스어이다.

이탈리아어로 리나시타(rinacita, 재탄생)라고도 한다.

이 르네상스는 당시 사람들이 직접 사용한 것이 아니라 훗날 19세기 역사가들이 용어와 시대를 정의하고 개념화한 것이다.


르네상스가 싹트기 전인 중세시대 이전의 세상은 신(神)의 세상이었다.

세상의 창조주인 신과 그 대리인인 교회와 성직자가 주관하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영원불변의 절대 진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것에는 하자가 있을 수 없었고 이의가 있을 수도 없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선인(先人)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될 뿐이었다.

하지만 어찌 보면 안정적이었다고도 볼 수 있던 중세적 사회질서의 틀에도 조금씩 균열이 나타나고 있었다.

잇따른 전쟁의 참화는 유럽인들에게 사회질서에 대해 회의를 품게 하였고, 페스트라는 전대미문의 전염병은 신에 대한 의지(依支)를 더욱 확고하게 해 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성(神性)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해 주었다.

사람들의 삶을 도탄에 빠트리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이런 물음표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시작했다.

신만을 향하던 눈을 인간 자신에게 향하게 했고,

천상(天上)의 섭리(攝理)만을 탐구하던 호기심을 지상의 이치와 자연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동안 메말라 있던 지성과 감성의 공간을 채우려 했다.

인간을 탐구하고, 자연현상을 연구하며, 인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그리스․로마인들의 지성과 감성이 필요해진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와 로마인들의 성과를 호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서서히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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