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평론가의 파이아키아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고 엄청나게들 말하길래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보고 처음 든 생각은 괴테가 쓴 소설에 관한 이야기인가? 혹은 [파우스트]의 숨겨진 이야기, 뭐 그런 걸 다루는 책인가? 살지 말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들어간 교보문고에서 어느 순간 이미 계산대에 와있는 나를 봤다. ‘까짓거 한번 읽어보자’
읽으면서 단순하게 잘 읽히는 소설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매우 지적이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곳곳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느낌도 무색하게 어떻게든 읽히긴 읽혀서 끝까지 읽어냈다. 끝에 가서는 각각의 일이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는 것을 보곤, 일본 작가의 특유성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당시 괴테 연구가라고 불리던 도이치는 결혼기념일을 맞아 레스토랑에 가게 된다. 홍차의 티백을 우려 마시던 중, 꼬리표 부분에 붙은 명언들을 뜯어본다. 도이치의 티백에는 이와 같은 문구가 써져 있었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단순하게 보이기만 하는 이 문장 하나가 도이치의 삶을 뒤흔든다. 세상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도 괴테에 대해 잘 알고 오래 공부했던 도이치이지만, 이 문장은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괴테가 했을법한 말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출처를 알기 전까지는 단언할 수 없었다. 그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도이치는 자신이 쓴 책의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의 개념을 적용하여 이해해 보기도 하지만 대충 얼버무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온갖 괴테의 책과 꿈을 겪어가며 답을 찾아간다.
1. 단 한 문장의 출처를 찾기 위해 스스로 고군분투하는 도이치의 모습이 가장 인상 깊다. 오로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문헌을 찾아보고, 알 법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독일을 방문하기까지. 학자의 호기심이란 이런 것일까? 만약 도이치가 현대의 사람이라면 이런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인공지능에게 질문하는 것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 관점에서 현시대와는 완전히 반대된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새롭게 느껴졌다.
2.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말하려면 그 이전에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일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이미 지나간 과거에 머물며, 미래를 미리 알 수도, 다른 역사를 실제로 살아볼 수도 없다. 이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간극 때문에 역사와 문화, 문학은 서로를 향해 연결되고 반복되며, 그 과정 속에서 우리의 삶 또한 끊임없이 새로 쓰인다.
3. 사람들은 명언을 보며 감명받거나 위안 받는다. 나도 그렇지만, 단순히 이것이 내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말하는 사람의 권위나 위상의 영향도 무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론 출처를 찾지 못하거나 잘 알지 못하는 학자일 경우 머릿속에서 잊히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권위 있는 사람 혹은 출처 모를 말을 단순히 수집해 위안을 받기보다, 나 스스로 사유하고 그 끝에 얻은 결론이 더 고귀하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것은 말해졌지만 모든 사람이 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4. 기억에 남았던 명언들 정리
”나는 당신의 의견에는 반대하지만, 당신이 그것을 주장할 권리는 목숨을 걸고 지키겠소“
“전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괴테는 정말로 모든 것을 말하려고 했구나, 그런 생각은 듭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힘만으로 무엇인가에 온 노력을 쏟아야 한다”
”Dum vita est, spes est“(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모든 것이 좋다!”
5. 소설을 쓴 작가가 단 23살의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필력이 좋은 것 같다. 나랑 2살 터울인데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려면 책을 얼마나 읽고 써야할까. 대략 1년간 읽는 책이 1000권이라고 하니 아쿠타가와상 수상은 당연지사일지도.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일본의 인문학은 굳건한 것 같다.
6. 읽는 내내 문학과 철학의 문장들에 압도되어 무지함을 깨달았다. 한편으론 이를 무시하고 싶어서 책이 너무 작위적이지 않나라고 책의 탓으로 돌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재독서하면서 깨달았다. 이 책은 배경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이 책이 재밌고, 얻을 게 많다고 느낄 것이다. 꾸준히,많이,가리지 않고 읽자!
7. 최근 자극적인 추리소설 덕에 도파민에 절여져 있어서 그런가. 단 한 문장의 출처를 두고 이토록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야기는 더욱더 낯설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빠른 전개와 강한 자극에 익숙해진 나에게, 이 소설은 천천히 곱씹으며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여러번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기도 하고 애정이 가는 책인 것 같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