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대화3

나에 대하여 : 수동, 사동표현과 가시줄기의 관계

by 케르겔렌

5년 전, 대학 글쓰기 시간에 교수님께서 내 문체에 대해 조언해주셨다. “학생은 글에 수동, 사동 표현이 너무 많아요. 문장을 빙빙 돌리지 않고도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다. 글을 제출하기 전, 몇 번이고 퇴고를 했음에도 “과도한 사동, 수동표현”에 대한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애꿎은 문장들만 다듬었으니 말이다.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나의 글을 살펴보니 과연 그러했다. 그때 내가 쓴 글 속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직접 하거나 느낀 일이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모든 일들이 내 손과 발, 머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그 ‘사실’은 어린 나에게 중요치 않았을 테다. 이 불상사가 도대체 왜 일어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됨이 감사했다”, “~에 대한 경험의 기회를 받게 된 것이 놀라웠다” 등의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 그 때의 나는 모든 일에 내 의지가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나’라는 존재가 없어지길 바랐던 마음이 글 속에도 투영된 연고였다. 이 얼마나 황당한 생각인가. 그러나 원인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때까지 나의 삶은 신의 뜻에 따라, 신의 주관 하에 살아가는 생이었기 때문에, 내가 긍정적인 생각이나 다짐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신이 내려주신 은혜이기 때문에... 나는 수차례 나의 마음을 겸허히 다잡은 것이었다. 아니지, ‘수차례 마음을 겸손히 다잡을 수 있도록 간구하여 응답받은 은혜로운 결과’였다! 그리고 그 은혜의 여파는 학부 때 썼던 나의 모든 글들 -- 일기, 감상문, 간증문 심지어 메신저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그때의 내가 지금 내 글을 본다면 과격하며 거만하다고 여길 것이다.


사실 어린 나 역시 그다지 순한 성격은 아니었다. 마음 한 구석에는 늘 날카로운 칼을 갈고 있었다. 나의 본성을 가두기 위해 온몸에 감아놓은 이 가시줄기를 잘라버리기 위해서 말이다! 가시줄기는 질기고 참 많은 일을 한다. 나를 생각하고, 포기하고, 또 다시 생각하게 했다. 가시줄기를 잘라서 벗어버리고자 몸부림치면 살갗이 찔려 괴로웠고 그래서 끊임없이 굴렀다. 고통 속에서 한참 구르다보면 문득 도망가고픈 고집을 버리고 싶어졌다. 가만히 서 있으면 이 뾰족한 밧줄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으니까. 오히려 나를 해하려 다가오는 존재들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리라. 드디어 잠잠해진 나를 둘러싼 무리는 내 날카로운 마음을 버리라고 말했다. 그들의 음성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이 사태를 예견이라도 한 듯 당당하게 들렸다. 그 무리들 중에는 어딘가 지쳐 보이는 내 모습도 있었다. 그는 공허한 눈으로 나에게 말했다. ‘살고 싶으면 네 의를 버려. 더 많은 것을 얻게 돼. 반쯤이 아니라 완전히 버려야 해. 아니면 나처럼 지친 모습으로 살게 될 테니까.’ 결국, 칼을 갈던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곧 칼을 가는 또 다른 내가 태어나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가시줄기는 내 마음이 죽어버리게 하고 또 다시 태어나게 했다. 무려 13년간.


그러던 어느 날, 지루한 대학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열심히 구르다가 잠시 숨죽인 나와 마주했다. 몇 번을 죽어버려도 기회만 있다면 다시 태어나는 나....... 그 기회가 교수님의 조언이었든, 철학책 속 한 줄의 문장이었든 중요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육체가 숨을 거둘 때까지 나의 영혼은 구르기를 멈추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싸가지 없이 사유하고 글을 쓰고 노래해야지. 그것이 나답게 사는 방법이며, 창조주는 내가 어떠한 모습이든 나를 사랑한다. 이 사실만은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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