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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09. 2023

실수 · 관계의 철학

넘어지는 방법에 대하여


때때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약속 장소에서 친구를 만나러 갈 때, 길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에 어울리는, 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옆을 스쳐 지나가죠.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사람과의 '만남'에서 겁나는 게 많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것, 때때로 반장 선거에 나가떨어지는 것까지도 개의치 않아 하던 때가 있었었죠. 손해 보는 일도 아니고,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일, 몇 번이고 다시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인생에서 매번 배우는 것은 '실수는 반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소한 건망증부터 말실수,  관계 갈등에 이르기까지.. 이런 반복이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는 조금 시간이 걸렸죠. 사소한 실수라고 생각되는 그 찰나로 다른 이에게 상처를 받게 되는 건 여전히 관계가 참 어렵다고 느끼게 되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인생에서 맺는 크고 작은 인연. 그 안의 수많은 헤어짐을 겪습니다. 그중 성격이 안 맞아서, 어떤 갈등이나 이유로 서로의 인연이 깨져버릴 때, 만남의 그 설렘이 기억나지 않고 헤어짐의 아픔이 더 깊게 남는 순간이 됩니다. 부담 없이 입는 해진 티셔츠에 얼룩이 쌓이듯 반복되는 갈등이나 이별이 내 일상에서 고스란히 쌓이는 건 썩 좋은 기분이 아니네요.




세탁소에 옷을 빨아 매번 새 옷을 챙겨 입는 것처럼,
못된 습관이나 실수도 지워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지나도 변하는 것은 사실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혼자 사는 집의 비밀번호는 3년째 같은 번호, 아침마다 옷의 단추를 채우지 않는 습관마저 여전하죠. 잘못된 버릇 하나하나가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고는 하지만, 흔하게 우산이나 안경 등을 잃어버리는 건망증, 불안할 때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 말수가 없어 대화가 어색한 성격 등, 고칠만한 게 너무나 많아 엄두가 나지 않는 듯합니다.


차고 넘치는 단점들을 생각해 본 후에 떠올린 것은 '고쳐야 하는 하는 실수나 습관, 그런 일상도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수가 무섭고, 그로 인해 다른 이에게 상처받을 게 두려운 순간. 그렇게 넘어지는 순간이 반복되는 일상이. 하지만 넘어짐이 두려워 매번 뒷걸음질 친다면... 길가에 남아있는 건 자신의 발자국뿐이겠죠. '외로움'을 겪는 것 또한 내가 만들어낸 발자국의 자취, 흔적이라는 걸 알았으면.


하늘 아래 내려쬐는 햇살도 한밤이 되도록 넘어지고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무수히 많은 순간을 반복하는데, 고작 한 번의 넘어짐으로 나(당신)의 자존감이 무너지지 않길. 넘어지는 순간은 누구나 겪는 일상일 뿐이고, 다음을 더 넓게 뛰기 위한, 성장하기 위한 기다림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을 맺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200여 개의 나라 중 한국이라는, 그중 수십 개의 도시에서 한 날 한 시에 마주칠 확률. 그 외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을 만나 말을 건네기까지의 확률은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지나쳐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과의 만남 하나하나가 인연이라기보다는 '기적'에 가까운 순간.



그런 기적의 순간은 긴 시간이 아닌 찰나에 걸려 있는 듯합니다. 다만 너와 내가 만나 함께 어울리기 위한 절대 조건은 실수가 없는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 어울릴 때 즐길 수 있는 '조화'라는 것을 배우게 되죠. (만남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내게는 아직 어려움이 많은 것 같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인생에서 각자가 자신만의 모습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마음속 소원이 이루어지는 마법 같은 일은 이루어지지 않고, 여전히 차고 넘치는 실수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가 많죠. 인생의 답안지가 빗금 투성이겠지만 인연과 만남이라는 기적은 정해진 공식처럼 정확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속이 쓰린 하루 속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축복일 듯합니다. 인생은 결국 정답을 적고 맞춰가는 객관식이 아니라, 자신만의 정답을 써 내려가는 '서술식'이니까. 예습, 복습도 할 수 없는 시험에서 스스로 잘할 수 있는 방식대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인 나(당신)의 인생이니까.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남들이 대신 살아낼 수 없는 나만의 인생이기에, 완벽하지 않은 부족함 속에서 인생에서 느끼는 아쉬움, 슬픔이 취미가 되지 않길. 바쁜 사회에서 우리는 슬플 시간도, 아쉬울 시간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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