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위 경이로운 호수에 갇히다

2025.5.17 꿈

by 프시케

힘든 꿈속 치유의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 지친다 싶을 때 멈추지 않도록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꿈이다. 기분이 좋았으니까! 하지만 완전한 선물이 아니라 꿈의 여정이 계속될 수 있도록 찝찝함을 남겨둔다.




폭포를 보기 위해 계곡으로 간다.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폭포가 보인다. 그런데 그 뒤쪽으로 더 큰 물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큰 폭포 위에 호수가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안다.


폭포를 보기 위해 폭포 위에서 밧줄처럼 길게 자라 내려온 풀을 잡고 올라간다. 힘들이지 않고 순식간에 올라간다.

호수가 열린다.

꽤 넓다. 너무 맑고 투명하다. 이 세상의 물이 아닌 것 같다. 가만히 서서 호수를 바라보는 나.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경외를 넘어 숭고함으로 나를 압도한다. 그냥 가면 안 될 것 같다. 이 물과 접촉하고 싶어 수면에 손가락 끝을 담근다. 신성한 물에 오래 담그지 못하고 금방 손을 뗀다.


이제 내려가려 한다.

돌아보니 호수가 조금 더 넓어져 있다. 타고 올라왔던 긴 풀이 사라졌다. 대신 짤막한 풀만 남아 있다. 이걸로는 내려갈 수 없다. 하지만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온다. 짧은 풀을 잡고 매달린다.


무서움에 반쯤 깨어난다. 꿈인 걸 안다. 어떻게든 내려가야 한다는 마음에 상상으로 풀을 키워내 본다. 잘 안 된다. 찝찝함과 속상함을 안은 채 깨어났다.




앞선 꿈에서 부엌바닥에 누운 아들을 보았다. 그 아들이 곧 나였다. 나는 오랫동안 차가운 바닥 위에서 살아왔고, 그 냉기를 아이에게까지 물려주었다는 것을 비로소 느꼈다. 그 자각이 무거웠지만, 이 꿈은 그 무게를 딛고 올라온 것 같다.


그동안의 꿈들은 평지에서 이루어졌다. 고향 동네, 집 안, 부엌바닥. 나를 치유하기 위한 꿈들이 머무는 곳은 늘 일상의 땅 위였다.

이번 꿈은 다르다. 산속 계곡으로 들어가고, 폭포를 타고 올라간다. 세상과 차단된, 수행자들이 머무는 근원의 장소로 향한다. 치유를 넘어,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꿈이다.


무의식은 친절하면서도 치밀한 연출가이다. 작은 폭포를 먼저 보여주었다. 일상에서 다루어온 감정들이 그만큼의 물이었다면, 그 뒤에 숨어 있던 큰 폭포는 아직 닿지 못한 깊이를 품고 있었다. 첫 번째를 감당해 왔기에 무의식은 두 번째를 열어주었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폭포가 보였고, 두 번째 폭포 앞에서는 직감적으로 그 위에 호수가 있다는 걸 알았다. 폭포 옆으로 바닥에 닿을 만큼 길게 자라난 풀은 마치 나를 기다린 듯했다. 올라가는 길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나의 소망과 무의식의 소망이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호수가 열렸다.

숭고함에 압도당했다. 그동안의 꿈 작업으로 죄책감, 분노, 불안의 찌꺼기들이 걷히고 나자, 내 안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근원의 힘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융은 이것을 자기(Self)라 불렀다.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기에 숭고함과 더불어 공포심도 함께 불러일으키는 것.


그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는 물에 손을 담갔다. 접촉하고 싶은 충동이 두려움보다 컸다. 이 에너지를 내 일부로 가져오고 싶었다. 그런데 접촉 후 호수가 넓어졌다. 올라올 때 잡았던 풀은 사라지고 짤막한 풀만 남아 있었다.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 호수를 보기 전의 나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두려움에 내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짧은 풀로는 내려갈 수 없었고, 반쯤 깬 상태에서 상상으로 풀을 길러보았지만 되지 않았다. 찝찝함이 오래 남았다.

왜 이렇게 개운하지 않게 끝났을까?


호수까지는 자연스러웠다. 무의식이 초대했고, 길을 내주었고, 끌어당겨 주었다. 하지만 물에 손을 담근 것은 나의 일방적 행동이었다. 접촉 후 상황이 내 감당을 벗어나자, 풀을 강제로 길러 내려는 시도. 상황을 내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익숙한 태도가 올라왔다. 하지만 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다시 시도해 보았다. 이번에는 다르게. 융의 적극적 상상처럼 풀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부탁했다. 그러자 풀이 죽죽 내려가기 시작했다. 호수에 손을 담그기 전에 허락을 구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오르내리는 도구가 밧줄이 아니라 풀인 이유가 선명해진다. 밧줄이었다면 내가 일방적으로 다루어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풀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생명의 주체는 나에게 있지 않다.


아이들도 그렇다. 내가 아무리 키우고 싶다고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잡아당긴다고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부탁하고, 기다리고, 그 생명이 스스로 자라기를 지켜보는 것. 그것이 풀이 나에게 알려준 것이다.


무모했지만 용기 있게 호수의 에너지를 받아온 나는, 이제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그 희망을 조심스럽게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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